유럽 재정위기의 해결책이 미궁에 빠지면서 금융시장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위기국의 채권을 대량 보유한 유럽 은행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마저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은행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장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떨어지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프랑스와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 은행의 신용등급을 1계단씩 강등한다고 14일 밝혔다. 최근 무디스가 프랑스 3대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만 두 번째 대규모 강등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의 크레디아그리꼴과 BFCM 및 핀란드 포횰라 그룹의 신용등급은 각각 기존 AA-에서 A+로 낮아졌고 덴마크 덴스케방크의 신용등급은 A+에서 A로 떨어졌다. 네덜란드 라보방크 역시 기존 AA+에서 AA로 하향 조정됐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이 올라 각 은행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피치는 "금융 산업 전반에 강한 역풍이 불고 있다"고 강등 이유를 설명했다. 은행들에 동시 다발적인 악재가 겹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유럽 금융권의 자금 경색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올 들어 유럽 은행들의 주요 달러 공급원이었던 미국 머니마켓펀드(MMF)가 유럽 시장에서 대규모로 빠져 나가면서 은행 간 단기대출이자를 뜻하는 3개월물 달러 리보(Libor) 금리는 14일 0.55505%를 기록해 올 들어 최고치를 또 다시 갈아치웠다. 유럽중앙은행(ECB)에 손을 벌리는 시중은행도 크게 늘었다. ECB는 지난주 역내 은행의 1주일 만기 초단기 대출 규모가 51억2,2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는 전 주 16억달러보다 3배 이상 많은 수치로 그만큼 달러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은행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마저 구제금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유럽 은행의 신용경색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위기국의 국채 금리를 떨어트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앞날은 불투명하다. 유럽을 제외한 유럽연합(EU) 26개국이 지난 9일 내놓은 새로운 재정조약은 단기적으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고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구제금융도 난관에 부딪혔다. 14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이날 미 상원에 "유럽을 위한 IMF 자금 확충에 참여할 뜻이 없다"고 못을 박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EU는 러시아에도 SOS를 요청하고 나섰다. 로이터에 따르면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 EU 수뇌부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동을 갖고 러시아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유럽 은행들이 내년에 차환하거나 상환해야 할 채권이 7,000억유로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IMF를 통한 지원도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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