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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로 얼룩졌던 2011회계연도 결산을 앞두고 일본 주요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교체되는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혹독한 경영환경이 예고되면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경영체제 쇄신을 내세우며 기존 CEO들을 경영일선에서 내몰고 있는 것. 새로운 체제로 재도약에 대비하겠다는 취지지만 가늠할 수 없는 엔고와 유럽 재정위기, 위축되는 내수시장으로 굴지의 기업들마저 대규모 적자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CEO 물갈이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2일 일본 H2O홀딩스는 오는 3월1일자로 자회사인 한큐한신백화점의 닛타 노부아키(64) 사장을 등기이사로 물러나게 하는 대신 아라키 나오야(54) 이사를 신임 사장에 선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닛타 사장은 6월 주총 이후 퇴임할 예정이다. 아라키 사장의 내정은 상무와 전무 등 7명을 뛰어넘는 발탁으로 일본의 인구감소와 소비둔화에 따라 유통업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파격인사다.
앞서 1일에는 하워드 스트링어(69) 소니 CEO도 4월부터 사장 및 CEO 자리를 히라이 가즈오(51) 부사장에게 넘겨준다. 소니는 연결결산으로는 4년 연속, TV 부문은 8년 연속 적자행진이 이어지면서 스트링어 체제에 대한 불신이 누적되자 게임사업에서 능력이 입증된 히라이 부사장을 최연소 CEO으로 파격 승진시키기로 했다.
캐논은 우치다 쓰네지(70) 사장을 사임시키는 대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미타라이 후지오(76) 회장을 사장으로 복귀시킨다. 현직에서 물러난 경영진을 5년여 만에 복귀시키는 이례적인 조치로 불투명한 경영여건을 돌파하기 위해 후치다 사장 대신 검증된 베테랑 경영자인 미타라이 회장의 리더십에 의지하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린홀딩스도 지난달 31일 자회사인 기린맥주의 마쓰자와 고이치 사장과 기린베버리지의 마에다 히토시 사장을 각각 교체하기로 했다. 이 밖에 종합상사인 소지쓰가 4월1일자로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도 같은 날 히라노 노부유키 부행장을 행장으로 올리는 등 젊은 CEO로 조직을 쇄신하려는 일본 기업들의 최고위직 인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이 너도나도 CEO 물갈이에 나선 것은 지속되는 엔고와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등으로 실적이 눈에 띄게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76엔대 안팎에서 움직일 줄 모르는 엔고는 일본 수출기업들에 사실상 불가항력의 악재다.
3일 대표 가전업체인 파나소닉은 2011회계연도의 적자폭이 당초 예상했던 4,200억엔을 크게 웃돌아 사상 최대 규모인 7,800억엔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발표했다. 소니의 경우 3월 끝나는 2011회계연도의 순손실 전망치를 당초 예상했던 900억엔의 두 배를 훌쩍 넘는 2,200억엔으로 올려 잡았다. 샤프도 올 회계연도에 사상 최악인 2,900억엔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1,000억엔의 적자를 예고한 NEC는 앞서 국내외에서 1만명을 해고하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이이치생명보험연구소의 나가하마 도시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75엔에 육박하는 엔고 상황에서는 어떤 제조업체도 수익을 낼 수 없다"며 "(엔고는) 일본 제조업체에 전쟁 이래 최악의 재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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