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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경성을 들썩인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꿈에도 잊지 못할 그녀, 봉선네 데릴사위로 들어가 7년 동안 소처럼 묵묵히 일했지만 배신 당한 영복은 고향을 떠나 상경한다. 서울역 수하물 운반부로 일하며 지난날의 상처를 잊고 살아가는 영복 앞에 새로운 사랑 계순이 나타난다. 병든 부친과 어린 동생을 데리고 살아가는 마음씨 좋은 그녀 덕분에 꽁꽁 얼어있던 영복의 마음도 다시금 녹기 시작하는데….
청춘의 십자로, 엇갈린 운명 앞에 선 1930년대 남녀의 희로애락이 2012년 서울에서 펼쳐진다. 기록 속으로 사라졌던 현존 최고(最古) 흑백 무성영화'청춘의 십자로'가 지난 2008년 한국영상자료원의 복원으로, 세상의 빛을 다시금 보게 됐다. 대사가 없어 줄거리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던 영화를'만추'로 유명한 김태용 감독이 영상을 바탕으로 각본을 다시 썼다. 배우 조희봉이 변사를 맡았으며 여기에 영화의 흐름에 맞춰 중간 중간 펼쳐지는 4인조 밴드와 뮤지컬 배우의 공연으로 무성영화의 여백을 채웠다.
26일 오후8시,'청춘의 십자로'첫 공연을 앞두고 젊은 남녀부터 여든을 앞둔 어르신까지 구 서울역사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청춘의 십자로'가 상연 될 다목적 홀은 1930년대 살롱처럼 새롭게 옷을 갈아 입었다. 당시 의상을 갖춰 입은 티켓판매원에서부터 모던 보이(modern boy)와 모던 걸(modern girl)이 건네는 추억의 알사탕과 찹쌀떡은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줬다.
본격적으로 영화가 상영되자 걸쭉한 목소리와 한 데 어우러진 변사의 익살맞은 입담에 객석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스크린에서 막 튀어나온 것 마냥 영화 속 계순과 영복으로 분한 두 뮤지컬 배우, 그들이 바로 앞에서 노랫말로 그려내는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어머니와 함께 공연 관람에 나선 이혜림(27)씨는 "스크린과 뮤지컬 배우들이 눈 앞에서 보여주는 실제 공연이 모두 새롭고 훌륭했다.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 나올 때는 어디에 눈을 둬야 할 지 모를 정도였다"며 버라이어티 쇼로 재 탄생된 '청춘의 십자로'에 남다른 느낌을 표했다.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에 재학 중인 스무 살의 한 영화학도는 "옛날 이야기라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공연을 보고나니)하지 않아도 될 고민이었다. 극 중 유독 여성을 탐하는 걸 좋아하는 개철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개철이 비너스 조형물을 이리저리 손으로 훑는 장면, 영복과 계순이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기 전 수줍은 마음에 괜히 애꿎은 돌을 이리저리 발로 서로 차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소감을 말했다.
잠자고 있던 무성 영화에 소리를 불어넣어 새롭게 탄생된 영화'청춘의 십자로'는 26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문화역 서울284'(구 서울역사)에서 상영된다. 80여 년 전 영화가 만들어졌던 곳, 소시민의 애환과 꿈이 녹아 든 바로 그 공간에서 한국 최고(最古) 흑백 무성영화가 관객을 1934년 경성(서울)으로 초대한다. 공연 시간은 80분, 티켓 가격은 2만5,000원이다. 예매는 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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