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이 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남유럽발(發)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보다 적극적인 정책시행을 불사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를 둘러싼 회원국 간 이견이 극심해 시장에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1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페인의 지난달 CPI는 -0.1%를 기록해 지난 2009년 10월(-0.7%)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10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CPI가 0.7%에 그치면서 부각되기 시작한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개별국가들 사이에서 현실로 확인되고 있다.
스페인뿐 아니라 2007~2012년 과도한 국가채무로 재정위기를 겪었던 남유럽 국가들이 일제히 디플레이션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ㆍ키프로스의 지난달 CPI는 각각 -2.0%, -0.2%, -1.6%를 기록했고 이탈리아의 물가상승률은 0.1%에 그쳤다. 물가가 떨어지면 부채의 실질가치가 증가한다는 점에서 이들 과다채무국의 디플레이션은 개별국가는 물론 세계 경제 전반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재 스페인 등 저인플레이션 국가의 가장 큰 리스크는 앞으로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기업과 소비자들이 투자와 소비를 늦춰 디플레이션이 커지는 악순환"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생산과 소비가 둔화되면 기업이윤 및 소득도 하락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채무변제 능력은 더욱 떨어져 유럽 역시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ECB는 이 같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0.5%에서 0.25%로 깜짝 인하했다. ECB는 이 같은 전통적 금리조절 정책을 넘어 ▦중앙은행에 대한 마이너스 예치금리 도입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 부활 등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도입할 수 있다고 잇따라 시사했다.
그러나 부양책 도입 여부를 비롯해 유럽의 경제상황을 둘러싸고 재정부국과 빈국 간 대립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오히려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유럽 경제가 균형을 되찾도록 독일이 더 이바지해야 한다"고 말해 독일의 높은 수출비중이 유럽 경제 전반에 불균형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는 "EU 집행위의 지적에 허술한 점이 많다"며 "독일 기업의 경쟁력이 우수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독일은 ECB의 적극적인 통화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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