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4일 북한 고위급 3인방의 전격적 방남(訪南)에서 "대통로를 열자"던 북한이 대북전단을 핑계 삼아 우리 정부가 제안한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에 대한 응답 대신 회담 개최 무산의 책임을 대북전단으로 돌리고 있다.
북한 계산된 협상 태도만 되풀이
지난 남북한 접촉과정에서 북한이 보여준 행태에서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발견된다. 바로 북한은 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협상과정을 준비단계·초기단계·중간단계·최종단계로 구분해 치밀한 준비와 철저한 전략전술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또 협상과정의 단계별 목표를 정립해 대응전략을 세분화하고 단계별 목표를 달성해 협상과정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협상 준비단계의 목표는 유리한 협상환경과 의제 모색, 협상 초기단계의 목표는 비타협적 자세로 높은 요구와 원칙을 제시하면서 협상의 주도권 장악, 중간단계의 목표는 의도적으로 계산된 전술로 일부 의제에 대한 합의 내지 합의틀 제시, 최종단계의 목표는 합의나 거부를 위한 명분축적 등처럼 과정별 목표를 달리한다. 이런 북한의 협상 전 과정을 '상대방 제압하기(maneuvering)' 전술이라고 한다. 익히 알고 있는 '벼랑 끝 전술'도 '상대방 제압하기' 전술 중 하나다.
최근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와 관련된 논란은 북한의 '상대방 제압하기' 전술에서 이해해야 한다. 대북전단 풍선을 향한 '조준사격'은 위기조성과 위협을 통해 협상 이전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막가파식 수법이었고 이는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전단살포가 중지돼야 회담을 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은 사전에 결론을 관철하기 위한 전형적인 알박기 전술이다. 또 북한 대북전단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은 대남위협과 남남갈등 유발, 회담무산 책임 전가의 명분축적 등 다중의 저의가 숨어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흑심(黑心)이 엿보인다.
지난 40여년 동안 대화과정에서 우리는 북한 협상행태의 특징을 알 만큼 알았다. 따라서 북한의 협상행태에 따라 우리의 협상기술과 전략을 개발하고 노하우를 축적해야 했다. 그러나 대화과정에서 늘 준비부족으로 전략부재의 모습을 연출했고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이번 북한 3인방의 방남 과정에서 우리의 모습도 예전과 닮았다. 전격적인 이들의 방남 목적이 어디에 있고 노림수가 무엇인지 판단하지도 않고 버선발로 뛰쳐나가 '대화에 목말라 있다'는 잘못된 신호만 줬다.
투명·당당·인내 원칙 세워 대응을
이제 우리는 협상전략의 원칙을 정립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그 원칙은 투명성·당당함·인내심이다. 투명성은 북한의 딴죽걸기를 방지하기 위함이며 당당함은 대화 목적에 맞게 요구하고 잘못된 선택에는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른다는 것이며 인내심은 대화 분위기가 성숙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하에 실수를 줄이기 위해 돌출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어 이행해야 한다. 이런 원칙과 매뉴얼은 우리가 바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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