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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0월 9일] 하나高를 아십니까
입력2009-10-08 20:26:34
수정
2009.10.08 20:26:34
처음 접했을 때는 기분이 상했다. 곰곰이 따져보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 기자는 '좌절시키기'라고까지 표현했다.
서울시 은평구에 세워지고 있는 하나고등학교는 하나은행이 기업시민주의에 입각해 설립하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다. 이 학교는 올해 신입생을 모집해 내년에 개교한다.
고도의 금융공학을 동원하며 0.01%포인트의 예대마진까지 고민해야 하는 살벌한 금융비즈니스 와중에도 수익보다 지출이 많을 교육사업에 주목한 하나은행의 결정이 일견 대단하다.
하나금융 직원 자녀 25% 배정
자금력이 풍부한 은행이 나서서 사회적 소명을 위해 교육사업을 펼치겠다며 모든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원하는 커리큘럼과 장학지원 제도 등을 내걸었기 때문인지 아직 신입생을 받지도 않았는데 입소문을 통해 벌써 대단한 명문고등학교로 인정받고 있다.
학생이나 학부형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로 인정받는지 굳이 비교하자면 전국의 수재들이 다니고 싶어하는 민족사관고등학교 정도가 될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서울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민사고보다 낫다는 사람도 있다.
하나고등학교의 평판이 예비 명문으로 굳어지면서 전국 각지의 고입을 앞둔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소재지가 서울이다 보니 지원자격은 서울에 거주하거나, 서울 소재 중학교 출신으로 제한돼 있다.
여기까지는 하나고등학교나 여타 서울 소재 특수목적고등학교나 차이가 없다. 교육부나 정부가 마련해놓은 '지방의 서울 진입 방어벽'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기자도 중학교 3학년 자녀가 있지만 일산에 거주해 하나고와는 인연이 없다). 일종의 현실수용 의식이다.
하지만 모집요강에 당당하게 걸려 있는 '하나금융그룹에 근무하고 있는 전국 임직원 자녀'라는 조건을 확인하는 순간 '어! 이건 아닌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현실수용 의식의 범주를 넘어선다는 판단이다.
이 학교가 올해 모집하려는 신입생 총수는 210명. 이 가운데 사회적 배려대상 40명과 모집정원외 특례입학 10명을 제외하면 사실상 160명의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나금융그룹 임직원 자녀에게 배정된 모집 정원은 40명. 160명 가운데 40명을 '하나패밀리'로 꾸려가겠다는 것은 취지가 무엇이든 '제 식구 챙기기'로 읽힌다. 개인이나 문중이 사재를 털어 세운 사립학교도 '입학생의 25%는 00 문중의 자녀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식의 편협한 운영방식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덧붙이자면 하나고등학교의 신입생 모집요강을 확인한 후 곧바로 연상되는 것은 '대단한 인재교육의 산실이 되겠구나'가 아니라 '앞으로 삼성그룹고등학교ㆍ현대그룹고등학교ㆍ동양그룹고등학교 등등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고 그곳에 그룹임직원자녀들을 챙기기 위한 최첨단 공교육 프로그램이 가동하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국가의 기조가 그 나라 젊은이들의 교육에 달려있다고 하듯 교육은 한 개인뿐 아니라 한 나라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학교가 있습니다. 학교가 제 역할을 다 하고 그 위상을 높이 세우는 일이야말로 이 사회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 값진 일이기에 하나금융그룹은 선진교육모델의 새로운 기준이 될 하나고등학교를 설립합니다(이하 생략)"
'제 식구 챙기기' 전락될까 우려
학교법인 하나학원의 이사장이기도 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하나고등학교의 설립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되새길 가치가 있는 말이지만 하나고등학교 설립 및 운영의 결과가 김승유 회장의 취지대로 나타날지 회의가 든다.
한 기업이나 조직이 구성원의 복리후생을 위해 탁아소나 유치원ㆍ특기학원 등을 갖춰놓고 애쓴다면 참 고마운 일이지만 모든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공교육을 제 식구 챙기기의 방편쯤으로 활용한다면 눈길이 고울 리 없다.
이미 다 결정된 사안을 놓고 뒤늦게 웬 딴죽이냐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늦더라도 짚어볼 것은 짚어보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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