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1월16일] 치머만 전보 사건 권홍우 편집위원 ‘참전이 옳다, 절대 안 된다.’ 미국 여론이 갈라졌다. 동부지역은 1차대전 참전을 촉구한 반면 나머지 지역은 전쟁을 강 건너 불처럼 여겼다. 독일에 온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윌슨 대통령은 미국 상선이 독일 잠수함에 격침돼도 참전을 꺼렸다. 참전국들이 무조건 종전협정을 맺는 ‘승리 없는 평화’를 주장해 영국과 프랑스의 분노를 자아낸 적도 있다. 참전을 피한 채 짭짤한 무기판매 수익을 올리던 미국은 1917년 3월을 고비로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4월2일에는 참전선언이 이어진다. 왜 그랬을까. 한 통의 전보 때문이다.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1월16일자로 미국주재 독일대사에게 타전한 전보의 골자는 독일과 멕시코ㆍ일본의 동맹 추진. 미국이 중립을 포기할 경우 멕시코과 일본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라는 지령이다. 멕시코에 텍사스와 뉴멕시코ㆍ애리조나 등 미국에 빼앗긴 영토를 회복시켜준다는 당근도 들어 있었다. 독일의 불행은 전보가 영국에 걸렸다는 점. 암호문을 해독한 영국은 2월 말 미국에 전문을 넘겼다. 3월 초 미국 주요 신문에 ‘독일, 미국 침략 동맹 추진’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결정타를 날린 인물은 치머만 자신. 당사자들이 한결같이 부인하고 일각에서는 영국의 음모설을 주장하는 가운데 치머만은 기자회견에서 ‘전보 내용이 사실’이라고 말해버렸다. 회견으로 미국의 중립은 끝났다. 100만명의 미군 참전은 1차대전의 승패를 결정했다. 역사상 가장 비싼 전보를 보낸 치머만의 실수에 깔린 것은 자만심. ‘아무도 독일의 암호를 해독할 수 없다’는 오만이 화를 불렀다. 영국은 정보전에 투자한 대가를 얻었다.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은 통신위성과 감청장비를 동원한 정보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보는 돈이자 생명이다. 국운까지 가른다. 입력시간 : 2007/01/1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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