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통상임금과 파견법ㆍ최저임금 등 노동 현안과 관련한 실타래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동계는 정권 초부터 불기 시작한 경제민주화 바람에 편승해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경영계는 과도한 비용 부담과 생산성 저하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노동계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중재 카드를 내밀었지만 노사의 의견 차이가 워낙 커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노동 현안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경우 올 하투(夏鬪)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동안 잠잠하던 노사 충돌 양상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통상임금 문제를 언급하면서부터다.
이후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 노조까지 소송이 봇물을 이루면서 현재까지 확인된 소송만 60건이 넘는다. 정부는 위원회를 구성,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이지만 노사 간 주장이 양 극단을 치닫고 있어 언제쯤 실타래가 풀릴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도 정치권에서 6월 국회 내에 처리하자는 여야 간의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재계의 반발이 만만찮다. 지난 4월 ‘정년 60세 의무화’ 통과를 맥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재계는 근로시간 단축 관련 법만이라도 통과를 지연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노사는 옛 파견법과 기간제근로자보호법에 대해서도 팽팽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두 법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자 13일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이들 두 사안 가운데 현장의 주목을 더 받고 있는 것은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이다. 이 조항은 ‘2007년 7월1일 이전에 파견 기간이 2년을 넘은 근로자는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며 이는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근로자의 지위 보장을 뜻하는‘고용간주’가 아닌 기업에 직접고용 책임을 부과하는 ‘고용의무’ 조항으로 바뀌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사측 참고인으로 나온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파견 근로자의 직접고용을 강제하는 것은 사업주의 계약 자율과 헌법상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라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 측 관계자는 “고용의제와 고용의무 조항 모두 넓게 봤을 때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담보하기 위한 취지”라며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나온 상황에서 헌재가 법적 안정성을 깨는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도 “위헌 판결이 나면 100만명가량으로 추산되는 불법 파견 근로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사항 역시 현재 노사 간에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현안이다. 노동계는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5,910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보다 21.6%나 많은 수준이다. 재계는 동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정 시한이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노사 간 힘겨루기만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민주화 흐름에 편승해 사측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 낼 기대감에 부푼 노동계와 비용 걱정 때문에 이를 선뜻 받아주지 못하는 경영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사태가 풀리기는커녕 점점 꼬여 가는 양상이다. 여기에다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는 임단협까지 맞물리면서 노동현안은 훨씬 복잡해지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는 이달 27일부터 전국 곳곳에서 무기한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현대차 등 강경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임단협 교섭이 난항을 겪을 경우 달아오르는 하투 열기에 기름을 끼얹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사 현안이 산적한 지금 시점에서 노사가 한 발짝씩 양보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등의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민주화 흐름을 타고 각 현안마다 잇속을 챙기기 위해 노동계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재계로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노동계를 다독이고 설득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여러 현안이 사실은 하나의 맥으로 이어져 있다”며 “정부가 정책을 나열만 하는 식으로 남발하기보다 하나의 돌파구를 찾아 산적한 문제를 아우르며 해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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