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글의 오염과 훼손이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광복 70주년을 바라보건만 아직도 일본말 찌꺼기를 털어버리지 못했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외래어와 국적불명의 신조어에 짓밟혀 우리말은 갈수록 순수성과 정체성을 잃고 있다.
더구나 문인ㆍ언론인ㆍ학자ㆍ교육자들은 말과 글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맥이 통하지 않거나 문법에 맞지 않는 말과 글을 쓰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낱말 하나, 문장 한 줄도 신중히 고르고 가다듬어야 마땅한데 잘못 쓰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겹말·일본말 찌꺼기 털어버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과 방송에서 해안가(해변가)ㆍ모래사장ㆍ관중들ㆍ취재진들ㆍ제작진들ㆍ우리들ㆍ제군들 하는 식의 겹말이 튀어나온다. 박수치다, 빈 공간, 푸른 창공, 늙으신 노부모, 아름다운 미인, 넓은 광장, 남은 여생, 수확을 거두다, 결실을 맺다, 배신감을 느낀다, 관점에서 본다, 각 나라마다, 매 시간마다도 마찬가지다. 해안가(해변가)는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곳이나 그 근처'를 뜻하는 해안(海岸)ㆍ해변(海邊)이나 바닷가로, 모래사장은 모래벌판이나 사장(沙場ㆍ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넓고 큰 모래벌판)으로, 박수(拍手ㆍ두 손뼉을 마주 침)치다는 박수하다 또는 손뼉을 치다로, 남은 여생(餘生ㆍ앞으로 남은 인생)은 여생이나 남은 인생으로, 결실(結實ㆍ식물이 열매를 맺거나 맺은 열매가 여묾. 또는 그런 열매)을 맺다는 결실하다 또는 열매를 맺다로 쓰는 게 옳다.
뿐만 아니다. 고려 중기 원나라 간섭기에 들어온 '마마'라는 호칭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초기를 배경으로 한 사극 대사에도 흔히 나오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기라성ㆍ민초ㆍ중차대ㆍ일가견 같은 일본식 용어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골프 친다'도 '축구 찬다'는 말처럼 틀린 말이고 모듬요리는 모둠요리, 찌게는 찌개의 잘못이다.
잘못된 신문ㆍ방송용어를 바로잡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 일본말 찌꺼기를 털어버리는 것도 급하다. 이를테면 생애는 일생, 가족은 식구, 오지는 두메(산골), 견습은 수습, 고참은 선임, 고수부지(高水敷地ㆍ큰물이 날 때만 물에 잠기는 하천 언저리의 터)는 둔치, 체념은 단념, 지분은 몫, 입장은 처지, 회람은 돌려보기, 출산은 해산, 가료는 치료, 추월은 앞지르기, 선착장은 배터, 그리고 이조(李朝)는 조선왕조, 현해탄은 대한해협 등으로 바꿔 쓰는 것이 옳다.
뿐만 아니다. 흔히 쓰는 말 가운데 결혼(結婚)도 일본식 용어고 사실은 혼인(婚姻)이라야 옳다. 혼(婚)은 남자가 저녁에 여자를 맞이하러 장인의 집(丈家)으로 간다, 인(姻)은 여자의 집에서 남자를 만나려고 시집(媤宅)에 간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결혼은 남자가 장가드는데 여자는 따라간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올곧은 정신 담아 조심해서 써야
바르고 알맞은 낱말을 골라 문맥이 제대로 통하는 문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말과 글에 올곧은 정신을 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잘 다듬은 말과 글이라도 표절을 하거나 거짓말을 일삼고 변변치 못한 이름이나 알리려 하고 남을 헐뜯고 시기하는 데 쓴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헛배웠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말 한마디, 글 한 줄을 조심해서 쓰는 것이 중요하다. 대체로 사람들의 사이가 벌어지는 것은 말 한마디, 글 한 줄 잘못 쓰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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