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이 호소문을 보면 공공기여를 골고루 나눠 사용해야 한다는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의 주장은 '무한경쟁이 인정되는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걸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명시돼 있다. 강남구 내에 위치한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를 개발하는 만큼 땅 주인인 현대자동차그룹이 내는 공공기여금을 강남구에 최우선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어 보인다. "무한경쟁을 주도하는 강남구의 물리적 경계는 공공의 가치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며 균형발전을 인정하는 주장들은 시대에 뒤처져 있다."
도시계획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자치구라는 물리적 경계보다 '생활권' 단위가 훨씬 중요함을 누구나 알고 있다. 생활권은 문화적 요소뿐만 아니라 경제활동 및 정치적 상호작용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개념이며 사용자가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세수 등 행정편의를 위해 그어진 자치구의 경계가 도시계획에 우선할 수는 없다. 하물며 교통영향평가조차 자치구 경계를 우선시하며 이뤄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광역생활권의 한 예인 강남역 일대를 보면 자치구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강남대로를 기준으로 서초구와 강남구가 나뉘어 있지만 이용자의 활동은 무한한 방향으로 이뤄진다. 1970년대부터 강북의 재원을 끌어모아 한남대교와 강남대로를 잇고 강남역을 건설할 당시 자치구 경계 따위가 우선시 됐다면 업무·상업·문화가 복합된 명소인 지금의 강남역 일대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삼성동 옛 한전부지에 현대차그룹 본사가 들어서는 것은 광역생활권인 '코엑스~종합운동장' 일대 개발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일대 개발이 완료되면 코엑스를 찾은 내·외국인이 걸어서 송파구 잠실운동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보행로가 놓이고 자유롭게 탄천과 한강 변을 거닐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된다. 이때 전 세계의 방문객들이 주목하는 것은 자치구의 경계가 아니라 공간의 연결성과 완성도·편의성 등일 것이다.
오히려 코엑스 일대 개발로 강남·강북 격차가 심화된다는 불만조차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생각하자는 '선진적인' 의견들이 가라앉혀 주는 상황이다. 강남의 심장부 개발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강남구의 성숙한 협조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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