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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미국과 한국의 연금

‘만기도 돌아오지 않은 대출을 갚기 위해 새로 돈을 빌리는 격.’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안에 대한 글랜 허바드 컬럼비아대 교수의 지적이다. 공적연금을 개인연금으로 민영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개혁안이 재정적자를 악화시키고 결국 미국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라는 이 같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사회보장제도자문위원회(SSAC)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사회보장제도를 민영화하면 첫해 1,050억달러, 10년간 총 2조달러의 재정부담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 개혁안의 가장 큰 문제는 공적연금을 민영화하면서 세금수입으로 개인연금기금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다. 개인연금의 부족분을 정부재정으로 보충한다는 의미다. 미국의 연금재정은 앞으로 40년 후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금혜택을 줄이거나 세금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정치적인 자살행위에 가깝기 때문에 소득세로 개인연금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은 임시방편이라는 게 중론이다. 부시 정부는 개인연금기금에 정부가 돈을 대는 것은 일종의 투자이지 재정적자요인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는 실정이다. 개혁안의 또 다른 문제는 공적연금이 민영화되면 저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에드워드 그램리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는 “연금계좌에 돈이 쌓여가는 것을 보는 개인들은 다른 저축을 줄이게 된다”며 “은퇴를 대비해 따로 저축하는 사람들은 더욱 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쌍둥이적자(재정적자+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저축률 증가가 사회보장제도 개혁안 때문에 방해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야 어찌됐든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연금문제가 뜨거운 감자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은 연금이 고갈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면서도 이렇다 할 대안이 없는 반면 미국은 40년 뒤에 고갈될지도 모를 문제를 놓고 벌써부터 수선을 피우고 있는 점은 너무 대조적이다. 재정이 달리자 연금을 빌려 나라경제를 살리겠다는 한국과 연금이 어려울 것 같으니 미리 재정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미국의 시각도 정반대다. 나라의 힘은 미리미리 대비하는 데서 키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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