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브리즈번 제9차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유로존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로존 침체 위기가 글로벌 경제마저 위협하고 있다며 독일의 재정확대와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매입 등 강력한 부양책을 또 한 번 요구하고 나섰다. 또 일본·유로존 등이 수출증가 등을 위해 통화약세를 유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역시 강달러 역풍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환율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커졌다.
15~16일 이틀간 열리는 이번 브리즈번 회의는 지난 2월 시드니에서 열렸던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합의했던 '앞으로 5년간 성장률 2%포인트 제고'의 구체적 이행 방안, 이른바 '브리즈번 액션플랜'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다. 하지만 회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불협화음이 커질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경제의 최대 현안인 저성장·저물가 극복을 위한 세부 실행 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지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잭 루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국제문제협의회(WAC) 주최로 시애틀에서 열린 연설에서 "유럽이 견조한 성장세를 회복하는 데 실패하고 더 깊은 침체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며 "유럽이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어 "유럽의 현상유지 정책은 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균형 잡힌 성장이라는 G20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ECB의 통화완화 정책만으로는 성장세를 회복하는 데 충분하지 못한 만큼 유로존 각국이 재정·통화·구조개혁 등의 정책을 혼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네덜란드가 자국 재정확대에 소극적인데다 ECB의 양적완화 추가 실시도 반대하면서 유로존은 물론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린 셈이다. 특히 미국은 유로존의 경기침체가 달러화 강세, 수출감소 등을 촉발해 미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날 11월 유로존의 경기선행지수가 100.7로 보합세를 보였지만 1년 전보다 낮아지면서 "성장 기반을 상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의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은 99.6으로 전월(99.8)보다 악화됐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날 G20 회의를 앞두고 펴낸 보고서에서 "유로존 성장 전망이 지난달 예상보다 악화됐다"며 "역내 인플레이션율이 더 하락할 경우 ECB가 국채매입을 포함한 추가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로이터와 텔레그래프는 이날 "유로존의 경기침체가 G20 정상회의의 최대 쟁점으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독일이 미국에 굴복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번 정상회의도 긴밀한 공조 전선은 구축하지 못한 채 '적극적인 통화·재정정책 지속'이라는 막연한 구두 선언만 내놓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FT는 "루 장관의 발언은 G20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간의 냉랭한 신경전을 예고한다"고 전했다.
또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올 2월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환율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높다. 루 장관은 "유연한 환율 체계는 글로벌 경제 회복의 중요한 원천"이라며 "과거 합의대로 환율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달러의 여파로 미국 무역적자 규모가 커지자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이는 사실상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독일·중국 등을 선제공격한 것으로 해당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G20 정상들은 이틀 동안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세계 경제의 회복력 강화 △에너지 등 3개 세션별로 주제를 논의한 뒤 16일 공동선언문에 서명할 예정이다. 또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막기 위한 공조방안 마련, 세계 무역 활성화를 위한 관세 감축 및 규제 철폐도 주요 의제 중 하나다.
또 신흥국의 요청으로 G20 차원에서 추진해온 IMF 개혁안의 경우 최근 미국 중간선거에서 IMF 쿼터 개혁에 부정적인 공화당이 승리함에 따라 이번 회의에서도 별다른 진전을 보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 대응 문제도 에너지 세션의 일부로 포함돼 논의할 예정이지만 회원국 간 이견이 커 공동선언문에 일반적인 내용을 담되 구체적인 이행 목표는 채택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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