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를 놓고 외교적 선택의 궁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종전 후 처음으로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기로 하는 등 미일 간의 '밀월시대'를 구가하는 것을 보면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되는 것은 아닌가.
'韓 = 등 터지는 새우' 피해의식 떨쳐야
실로 중국의 가파른 부상으로 세계적 세력구도가 바뀌면서 많은 국가에 외교적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 대륙에서 왕조가 바뀔 때마다, 일본이 부상할 때마다, 또 19세기 제국주의 세력의 각축 속에서 충격을 크게 받았던 역사를 감안하면 국제세력구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같은 피해의식을 떨치고 우리의 외교적 정체성을 확립할 때가 됐다.
첫째,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의 망령을 떨쳐야 한다. 주변국을 고래에, 우리를 새우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비하다. 아무리 주변국이 고래 같은 강대국이더라도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갖춘 우리나라를 새우에 비유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고래가 서로 싸운다는 전제도 근거가 없다. 중국이 성장한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그것이 상대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잠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에서 냉전적 대결을 유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과 소련이 정반대 체제로 세계에 대한 배타적 지배를 다퉜던 냉전과 달리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이 구축하고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틀 속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미일 접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결국 피해의식의 한 발현이다. 워싱턴이 아베에 '열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2006년 이후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로 무기력했던 일본에 대한 실망의 반작용이라는 측면이 크다.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한 아시아에서 일본이 외교적 위상을 회복하고 적극적인 친미 행보를 보이면 미국으로서는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위안부 및 과거사 문제 등 현안을 둘러싼 한일 갈등에서 미국이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올해로 광복 70년을 맞는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정치적 자유, 경제적 풍요, 외교적 인정에서 적어도 세종대왕 치세 이후 최고의 성세를 이룩했다. 향후 70년을 내다보면서 지금의 성세를 유지·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적극적·긍정적 태도 견지를
우선 '동북아와 주변 4강'을 벗어나 시야를 세계로 확대해야 한다. 동남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이제 우리에게 제2의 무역 파트너가 됐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버금가는 큰 나라다. 또 '지정학적' 사고를 벗어나 안보·번영·환경·문화를 아우르는 복합적 사고를 키워야 한다. 오늘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힘만이 아니라 규범·규칙·관계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우리나라는 분명 남을 이끄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 지도자란 남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그 정체성에 따라 국가이익을 정의하고 그것을 추구한다. 새로운 외교적 정체성에 대한 범국민적 합의를 구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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