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월30일, 탄자니아의 한 여학교. 10대 여학생 3명이 갑작스레 웃기 시작했다.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학생과 교사들도 따라 웃었다. 웃음은 2년 반 동안 인근 마을 수천명의 주민들에게 퍼졌다. 웃음 바이러스가 번지는 동안 이 지역의 범죄와 발병이 크게 줄었다. 웃음 바이러스가 가진 효능 덕분이다. 코미디를 시청한 사람들의 혈액을 조사했더니 병균을 막는 항체가 평소보다 200배나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웃음은 그 자체로 명약이다. 함박웃음을 터뜨릴 때 우리 몸 속의 650여개 근육 가운데 231개와 206개의 뼈가 움직여 5분간 에어로빅을 한 것과 같은 운동효과를 낸다. 최근에는 ‘웃음치료’가 각광 받고 있다. 웃음은 혈압을 낮추고 혈액순환을 개선하며 산소공급까지 증가시킨다. 웃음을 통해 생성되는 엔도르핀과 엔케팔렌 같은 유익한 호르몬이 피로와 통증을 잊게 하고 스트레스까지 풀어준다. 많이 웃는 사람의 혈액 속에는 암세포를 파괴하는 킬러 세포의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임상실험 결과도 나왔다. 사람들은 왜 웃을까. 생리적 반응일까. 사회적 신호일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후자의 성격이 강하다. 탄자니아의 사례도 웃음이라는 집단 구성원의 행동에 동조해 나타난 ‘사회적 바이러스’라는 점을 말해준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웃음에 인색해진다는 점. 사람들은 여섯 살 때 하루 평균 300번 이상 웃지만 성년이 돼서는 17번에 그친다. 웃을 일이 없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냐는 항변이 나올 법하다. 온통 우울한 소식뿐인데 웃기란 쉽지 않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현대 심리학의 대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윌리엄 스미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기뻐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기뻐지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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