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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도와 이라크를 침공해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20세기 최연소 총리, 총선 3연승의 사나이, 보수와 진보의 장점을 취하려 했던 '제 3의 길' 정책 등 등 화려한 정치경력도 자랑하는 블레어의 회고록 번역판이 나왔다.
그는 이라크 침공이 정당했다고 강변한다. "나는 여전히 후세인 정권 유지가 후세인 제거보다 우리 사회에 더 큰 위협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후세인 정권은 내부적으로 끔찍한 만행과 억압의 원천이었고 외부적으로 불안과 갈등의 원인이었다."
블레어 전 총리는 회고록인 이 책을 통해 "사담 후세인이 유엔의 무기사찰을 집요하게 방해했고,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식량과 의약품을 수입하는 대신 무기를 구매하는 등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시켰다. 이라크의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없었으므로 후세인을 제거한 전쟁은 정당했다"는 파격적인 논리를 펼친다. 이 책은 내용의 진위 논란은 물론 저자 사인회에 신발이 날아드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토니 블레어의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다우닝가 10번지(영국 총리 관저)에 머무르며 겪은 다사다난한 10년간의 기록을 무려 3년이란 집필기간을 거쳐 책으로 펴냈다. '460만 파운드(약 85억원)'라는 가격에 판권이 팔려 출간 전부터 주목받은 이 책은 출간과 함께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등극해 화제의 중심에 섰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옥스포드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다 노동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정치 성장기'가 첫번째고, 사회정의와 시장경제를 결합한 '제3의 길'을 정치 이념으로 채택해 '블레어리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던 '정치 활동기'가 두번째다. 마지막은 중동특사 활동, 자선재단 설립 등 '퇴임 이후'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인 블레어 전 총리는 이라크 침공 외에도 다이애나 왕세자비 죽음과 넬슨 만델라, 빌 클린턴, 블라디미르 푸틴, 조지 W.부시 등 세계 지도자들에 대한 허심탄회한 평가, 정치권력의 본질과 행사에 대한 본인의 고찰 등을 풀어냈다. 그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에 대단히 뛰어나며 나와 정치적으로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고,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우연히 대통령이 된 바보'라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대단히 영리한 리더"라고 평가했다. 자신의 뒤를 이어 영국 총리가 된 고든 브라운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신노동당 노선을 따르지 않아 보수당에 패배했고, 정치적 감각이 부족하고 감성적 지능은 제로다."
그동안 토니 블레어의 면모와 성과를 조명한 저술들은 많았지만, 토니 블레어가 자신의 목소리로 삶과 정치를 이야기한 서적은 없었다. 영국 정치사는 물론, 글로벌 정치사의 한장을 장식한 지도자가 들려주는 회고록이자 '비하인드 스토리 방출'이라는 점이 이 책의 강점이자 특별함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4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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