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부터 시작된 14차 협상은 마침표를 찍기까지 쉽지 않았다. 정상회담을 4시간가량 앞둔 10일 오전7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은 다시 만났다. 결렬될 경우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은 물 건너갈 상황이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협상을 거쳐 한중 FTA는 극적으로 최종 합의점을 찾고 두 나라 정상이 타결 선언을 하면서 30개월을 끈 협상에 종지부를 찍었다.
30개월은 거대 경제권과의 FTA 중 가장 길었다. 한미 FTA는 협상 개시부터 타결까지 10개월(추가협상 기간 제외), 한·EU FTA는 26개월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양국의 정상이 한 번씩 바뀌었고 장관 포함 수석대표는 한국이 5번, 중국이 4번이나 교체됐다. 한중 FTA가 그만큼 더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얘기다.
협상의 고비는 많았다. 그때마다 이를 극복하는 데 양국 정상의 역할이 컸다. 협상은 2012년 5월 최석영 통상교섭본부 FTA교섭대표와 위지앤화 중국 상무부 부장조리(차관급)가 협상 개시 공동성명 문안에 협의하며 시작됐다. 하지만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두 정상은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 "한중 FTA 협상팀이 협상을 조속히 다음 단계로 진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고 적시했다. 이후 1단계 협상에서 맴돌던 FTA는 3개월 뒤 7차 협상에서 '품목 수 90%, 수입액 85% 개방' 등을 골자로 한 모델리티(협상기본지침)에 합의, 1단계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협상은 2단계로 넘어갔지만 역시 진척은 더뎠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협상을 더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양국은 양보를 하지 않은 채 대치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농업 부문을 최대한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중국의 경우 석유화학이나 전자·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에서 민감한 입장을 취하면서 이견을 보였다.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역시 양국 정상의 만남이었다. 7월 초 시 주석은 국빈 방한을 했고 두 정상은 정상회담 결과 공동성명에서 "연말까지 협상을 타결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한다"는 문구를 집어넣는 데 합의했다. 회담 직후 대구에서 열린 12차 협상에서 서비스·투자 분야 자유화 방식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중 FTA 협상을 시작할 때 솔직히 타결까지는 장담도,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12차 이후 협상은 5부 능선을 넘었다"고 말했다.
14차 협상은 양국 모두 배수의 진을 치고 들어갔다. 양국은 협상 개시 이후 처음으로 수석대표를 장관급으로 격상해 정무적인 판단까지 함께 조율해 막판 타결을 이루겠다는 의도였다. 6일 오후7시(현지시간) 베이징 창안제 남쪽에 위치한 중국 상무부에서 윤 장관과 가오 상무부장이 수석대표로 마주 앉았다. 양국 장관이 협상 대표로 얼굴을 맞댄 것은 협상 개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빅딜'을 시도했지만 공산품·농수산물의 개방 범위와 수위, 원산지 규정 등 마지막 쟁점을 놓고 협상을 했으나 쟁점을 좁히지 못했다. 첫날 협상을 곁에서 지켜본 한 인사는 "솔직히 말해 정말 어렵다"며 첫날부터 양국 대표단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됐음을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실무협상은 주말까지 이어졌고 그 사이에 '밤샘 협상'도 계속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진전 여부는 외부로 일절 공개되지 않았지만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양측 수석대표를 거쳐 양국 정상에게까지 보고돼 별도 지침을 받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나흘간에 걸친 제14차 실무협상은 9일 밤늦게까지 지속됐지만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그러다 잔여 쟁점에 대해 1시간가량의 최종 협상을 진행, 정상회담을 1시간45분 앞두고 합의를 끌어냈다.
성과도 있었지만 협상 결과를 놓고 지적도 제법 많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국익을 위해 민감품목이 대거 빠진 낮은 수위의 FTA였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안한 동북아 정세의 정치적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낮은 수준의 협상이 타결된 부분이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협상 과정이 너무 베일에 싸여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협상 내용이 베일에 가려져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구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면서 "낮은 수준의 FTA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더 많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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