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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화두는 물가·세금

"물가 안정시켜라, 세금 거둘 것부터 생각 말라"<br>청와대 첫 수석비서관회의<br>"정치는 국민 위한 것 조직법 빨리 처리를"<br>朴대통령, 국회에 변화 주문

긴장감이 온방을 감쌌다.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서자 허태열 비서실장과 9명의 수석비서관들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건네지만 어딘지 모르게 엄숙함이 느껴진다.

박근혜 정부의 첫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린 27일 오전10시 청와대 집현실의 풍경이다.

국회에서 공전을 거듭하는 정부조직 개편안 탓에 내각 장관들이 임명되지 못한 데 대한 답답함과 함께 국정운영 최고책임자로서의 책임감도 배어나온다.

박 대통령은 준비해온 모두발언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고 수석들은 박 대통령 국정운영의 방향성과 지향점이 무엇인지 연신 수첩에 메모를 한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끝나자 허 실장이 "저희들이 열심히 보좌하겠다"라며 답례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민생경제 살리기'를 수석들에게 당부했고 구체적인 실행목표로 '서민물가 안정'과 '국민들의 세금을 올리지 않는 복지재원 마련'을 제시했다.

청와대 1기 수석들에게 내린 엄중한 숙제이자 미션이었다. 서민물가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박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 등 인상요인이 누적됐던 가공식품 가격, 공공요금 등이 한꺼번에 인상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인상으로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될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석들에게 물가안정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박 대통령은 "서민부담이 완화될 수 있도록 가격인상 요인을 최소화하고 부당편승 인상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며 관계당국의 물가안정 노력을 당부했다. 서민물가를 담당하는 조원동 경제수석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어 "국민들에게 세금부터 거둘 궁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증세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공약이행 재원마련을 위한 세금징수부터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먼저 최대한 낭비를 줄이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등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순간 메모를 하던 최성재 고용복지수석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진다.

회의가 끝난 뒤 최 수석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추상 같은 엄명으로 받아들였다"며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정식으로 임명되면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한 실행방안을 같이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회의는 사각 테이블을 놓고 진행됐는데 자리 하나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텅 비어 있었다. 수석들의 착잡한 심정을 헤아린 듯 박 대통령이 말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오늘 김장수 안보실장이 참석하지 못했다"면서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못해 안보 분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셔야 할 분이 첫 수석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내편 네편'으로 갈려 정쟁을 일삼으며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국회를 향한 서운함과 야속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정치라는 것이 다 국민을 위한 것인데 이 어려움을 어떻게…"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바로 옹골차게 국회의 태도변화를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제가 융합을 통해서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핵심 과제로 삼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도 지금 통과가 안 되고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국회에서 통과시켜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순간 바로 옆자리에서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진 이정현 정무수석은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리는 것을 감지했다.

수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지자 박 대통령이 분위기를 바꿨다. 박 대통령은 이어 "이런 과도기적 상황에서 정부가 중심을 잡고 민생을 포함한 국정 현안들을 잘 챙겨나가야 한다"면서 "오늘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금 이 시기에 꼭 챙겨야 할 정책사안, 조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들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상식선에서 보자면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참석하는 국무회의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면서 현안을 진단하고 '민생 살리기' 방안을 만들어야 하지만 정부조직 개편안의 국회 통과는 계속 늦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제가 지난 취임사에서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 한반도 통일기반 구축 등 주요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했다"면서 "후속조치들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철저히 계획을 잡아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공약과 관련해서는 공약사항을 점검하고 문제점을 파악한 후 반드시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거듭 말했다. 허 실장과 9명의 수석들은 박 대통령이 '반드시'라는 단어에 액센트를 주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이날 회의는 박 대통령의 모두발언에 이어 국정기획ㆍ정무ㆍ민정ㆍ홍보ㆍ경제ㆍ미래전략ㆍ교육문화ㆍ고용복지ㆍ외교안보 수석비서관 순으로 보고를 했다. 오전10시부터 1시간10분간 격의 없이 자유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집현실 회의가 끝나자 윤창중 대변인은 춘추관을 찾아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했다. 앞으로 박 대통령이 매주 한 차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해 국정현안을 챙기고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는 매주 두 차례 열기로 했다. 민생경제와 한반도 안보상황이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긴급을 요하는 현안인 만큼 매일 오전8시에 비서실장 주재의 일일 상황점검회의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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