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베넷 가문에는 남자만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한사(限嗣)상속' 제도가 대대로 내려오고 있다. 딸만 다섯을 둔 베넷 안주인은 생면부지의 조카에게 재산을 빼앗길 처지에 몰리자 딸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부자 집안에 시집 보내려고 갖은 해프닝을 벌이게 된다. 한사상속이란 재산을 물려줄 때 피상속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음 세대의 상속인을 미리 지정해놓은 것으로 몇 대가 내려가도 재산을 집안에 묶어두기 위한 것이다.
칭기즈칸은 아들 네 명이 있었는데 생전에 3남 오고타이를 후계자로 정했지만 사후에는 막내인 툴루이가 국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는 유목민족 특유의 '말자(末子)상속'에 따른 것인데 장성한 아들을 차례로 분가시키고 쇠약해진 아버지가 마지막 남은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선수교체를 하는 식이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상속제도가 등장했지만 생존에 가장 적합한 경쟁력을 갖춘 인물을 고른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원칙일 듯하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장남과 이외 아들은 물론 딸들에게도 재산을 고르게 분배하는 '균등(均等)상속'의 전통을 갖고 있었다. 조선 양반가문의 분재기(分財記)를 보면 토지의 비옥도와 수확량까지 따져 재산을 나눴다고 한다. 율곡 이이의 부친도 7남매와 후처 권씨에게 논과 밭·노비까지 균등하게 상속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학계에서는 조선 후기에 적장자(嫡長子)를 중심으로 한 종법제(宗法制)가 자리 잡으며 '장자상속'이 널리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상속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법정 싸움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옛 가치관이 퇴색하면서 재산을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형제들의 목소리가 커진 탓이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재산을 유족에게 남기는 것이 가장 지혜롭지 못한 방법"이라고 설파했다. 무분별한 상속이야말로 개인과 사회를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지적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전하는 바가 크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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