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증권이나 은행 등 금융업계 종사자들 가운데 거액의 빚을 갚지 못해 법원에 탕감 신청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고액 연봉자인 경우가 많아 돈을 빌려 투자를 하기가 쉬운데 경기침체에 따른 증시부진으로 재테크에 실패하면서 불어난 빚을 갚지 못해 결국 법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8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일반회생을 신청한 이들 중 회사원은 47명으로 전체(339명)의 14%를 차지했다. 일반 회사원의 회생 신청 비중은 지난 2009년 5%(8명), 2010년 4%(8명), 2011년 3%(7명)를 기록하는 등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2012년 10%로 올라선 뒤 지난해에는 14%까지 치솟았다.
실제로 최근 통계를 보면 일반회생 신청자 가운데 회사원들의 비중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2013년의 경우 일반회생 신청자 가운데 회사원 비중이 회사대표(22%)와 개인사업자(21%), 의사(16%)에 이어 4위였지만 지난해는 회사대표(27%)와 개인사업자(21%)에 이은 3위로 올라서면서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인 의사(12%)를 제쳤다.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과 개인사업자의 신청이 대부분인 탓에 일명 '전문직 회생'이나 '사업자 회생'으로 불렸던 일반회생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반회생은 담보가 없는 경우 빚이 5억원을 초과한 사람이, 담보가 있는 경우는 빚이 10억원을 초과하는 이들이 이용하는 제도다. 개인회생은 일반회생 신청 기준보다 채무액이 적은 사람이 이용한다.
증권·은행맨 등 고액 연봉을 받는 회사원들이 거액의 빚을 지게 된 것은 재테크에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회생전문 변호사들에 따르면 이들 대다수는 처음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을 위해 은행 등의 제1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지만 곧 투자 실패로 대출의 원금을 갚기는커녕 이자만 늘어난 상황에 놓인다. 결국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다른 은행에서 다시 대출을 받는 '돌려막기'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늘어난 대출은 1금융권에서의 대출 거부로 이어져 이율이 훨씬 높은 캐피털 등에서 추가 대출을 받게 된다. 이런 식으로 쌓인 대출 원금과 이자가 합쳐지면 수억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는 것이다. 한 회생전문 변호사는 "현재 일반회생을 진행 중인 금융권 종사자의 경우 주식투자 등의 재테크로 인해 빚을 지게 됐다"며 "재테크가 잘될 때는 상관이 없지만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는 잘 안되다 보니 결국 원금 회수에 실패해서 회생까지 신청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청인 가운데 금융권 종사자들이 유독 많은 것은 이들의 연봉이 보통의 회사원보다 높은데다 투자의 유혹에도 쉽게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기업·일반 회생 전문가인 정경석 법무법인 중정 대표변호사는 "일반 회사원과 달리 연봉이 높다 보니 대출을 많이, 여러 차례 받을 수 있어 결국 많은 빚을 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연대보증으로 인해 일반회생을 신청한 이들도 많았다. 친인척 등의 연대보증을 섰다가 거액의 빚을 지게 된 경우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재테크 외에도 형제자매 등 친인척이나 지인의 연대보증을 서다 채무를 지게 된 경우도 상당수"라고 귀띔했다.
일부에서는 회사원의 일반회생 신청 증가의 원인을 좁게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회생전문가인 김관기 변호사는 "일반회생 신청이 늘고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중산층의 붕괴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원인을 하나로 유형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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