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54ㆍ사진) 비트컴퓨터 회장에게는 항상 '1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난 1983년 대학 재학시절 의료정보용 소프트웨어(SW) 개발 전문업체인 비트컴퓨터를 설립하며 '국내 1호 벤처기업'과 '국내 1호 SW 개발업체'라는 타이틀을 안게 됐다. 병역의무를 대신해 연구기관 또는 산업체 등에 종사하게 하는 '병역특례 제도'의 첫 번째 지정업체 역시 비트컴퓨터였으며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의 메카인 강남 테헤란로에 입주한 첫 번째 IT업체이기도 하다. 숱한 벤처기업들이 명멸하는 와중에 30여년 동안 꿋꿋이 벤처 1세대의 자존심을 지켜온 조 회장은 "처음부터 최초나 1호 기업이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며 "문득 돌아보니 현재에 자리에 와 있었을 뿐"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983년 '청년 조현정'은 여느 대학생들처럼 어느 기업에 갈까라는 고민 대신 '취업과 창업'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학점이나 자격증 등 소위 '스펙 쌓기'에 몰두해 두둑한 연봉의 회사에 취업하는 것보다 조 회장에게는 '서른이 되기 전에 업계 최고의 전문가'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던 창업. 하지만 조 회장의 말대로 '일류대학 출신, 집안 재력, 풍부한 사회경험과 인적 네트워크' 등 사업을 하기 위한 충분조건 중 어느 것 하나 그에게 해당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조 회장이 선택한 성공전략은 '열정과 시간'이었다. 조 회장이 출퇴근 시간을 아끼고 업무에 몰두하기 위해 서울 청량리 맘모스호텔에서 창업을 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전화와 조립PC, 중고 책상뿐이었다. 그는 "짜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하루 17시간을 일하며 1년을 17달처럼 보냈다"고 회상한다. 이 같은 열정과 노력 덕분에 조 회장은 창업 이듬해 연매출 1억7,000만원, 그 다음해에는 16억원을 올리며 대박신화를 예고했다. 젊은 세대들의 기업가정신 쇠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퍼져 있는 상황에 대해 조 회장은 "20대의 열정이 백수(百壽)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가 정신은 비단 창업시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일반 기업에 취직해도 스스로 오너십을 갖고 열정을 다 한다면 반드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그는 틈날 때마다 대학가 등을 찾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벤처정신과 도전정신을 전파하며 제2, 제3의 조현정을 꿈꿔야 한다고 당부한다. 벤처기업들의 평균 수명이 5년을 넘지 못할 정도로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한결같이 기업을 이끌고 있는 조 회장의 경영철학은 다름 아닌 '착한 기업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원칙이다. 그가 첫 손가락에 꼽는 최고의 경영지침서 역시 초등학교 1학년의 바른생활 교과서이다. 조 회장은 "경영자가 사회 생활을 하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덕목만 지킨다면 튼실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다만 무리하게 욕심을 내거나 속도를 내 사업을 확장하려 하면 그 과정에서 과부하(편법이나 탈법)가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경영자 스스로가 기업의 명을 재촉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조 회장의 '착한 경영'은 그의 일상생활로도 이어지며 훈훈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유년시절 중이염을 앓고 있었던 조 회장은 가난했던 집안형편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쳐 한쪽 귀의 청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생각에 자원입대를 결심, 보충역으로 군에 복무했던 전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이러한 원칙은 조 회장의 자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영주권자인 조 회장의 장남은 2007년 군에 자원입대했으며 바로 눈앞의 사물도 명확히 식별하기 힘든 -12디옵터의 시력으로 4급 판정을 받았던 차남 역시 지난해 시력 수술을 받아 자원 입대하기도 했다. 최고 전문가가 되겠다며 앞만 보고 달려오던 조 회장이 불혹을 넘기면서부터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인재 양성이다. 그는 주변에 '잠자는 친구를 깨울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던지곤 한다. 조 회장은 "내가 많이 팔려면 내 친구가 망하고 내 친구가 많이 팔면 내가 망하는 것이 산업사회의 논리"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으로는 주변 사람들의 능력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조 회장은 '십자가 네트워크'를 설파하고 다닌다. 십자가 네트워크란 윗사람을 많이 알도록 노력해야 하고 아래로는 후배들을 키우며 양 옆으로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사귀어둘 만한 사람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이러한 철학 덕분에 조 회장은 경제계에서도 '거미줄 인맥'을 자랑하는 마당발로 통한다. 국내 대표적인 SW 개발자 양성소로 통하는 비트스쿨 역시 조 회장의 십자가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1990년 설립된 비트교육센터는 현재까지 대략 8,270명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졸업생들은 6개월 동안 1,800시간에 해당하는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을 거친 만큼 업계에서도 다들 내로라하는 실력자들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 졸업생 모두가 관련 IT기업에 100% 취업한 것은 물론 외환위기의 실업대란 속에서도 필드에서 활동하는 비트 출신인재가 4,100여명에 달할 정도였다. 조 회장은 "젊은 인재들이 많이 배출돼야 산업이 발전하고 국가 경쟁력도 함께 성장한다"며 "현재 13만명 수준인 국내 SW 개발자를 앞으로 5년 내에 30만명까지 확대해 탄탄한 산업기반을 갖추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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