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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당기고 표적을 겨냥하는 '궁수'는 살짝 부는 바람만으로도 모든 것을 그르쳐 버릴 수 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른 채 활을 당기는 영화 '로빈후드'에서 주인공 러셀 크로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세 영국의 영웅 '로빈후드'는 그동안 초록색 '쫄쫄이' 의상을 입고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의적'으로 우리에게 인식돼 있다. 63회 칸 국제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로빈후드'는 어떻게 '로빈 롱스트라이드'라는 평범한 사람이 '의적'이 됐는지를 보여주는 '로빈후드 비긴스(Begins)'라고 할 수 있다. 13세기 영국. 무능하고 부패한 왕의 지휘 하에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용병 로빈 롱스트라이드(러셀 크로)는 뛰어난 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무의미한 전쟁에 회의를 느낀다. 이후 이어지는 프랑스의 위협에 '국민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영웅이 된 그에게 돌아온 것은 독재자의 탄압뿐이다. 10년 전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함께 만들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과 러셀 크로는 10년만에 당시의 감동을 재연해냈다. 다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액션은 더 과감해졌고 러셀 크로의 연기는 '글래디에이터'만큼 화려한 움직임 없이도 더 깊어졌다. 영화를 위해 체중 10kg을 감량했다는 러셀 크로는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상황조차도 관객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흡입력으로 영화를 지탱한다. 수백m 너머에서 말을 타고 도망가는 적에게 활을 겨눠 명중시키는 장면은 활이 아닌 눈으로 명중시킨 느낌을 줄 정도다. 러셀 크로의 깊이 있는 연기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웅장한 액션 연출 속에서 더 빛이 난다. 특히 영화 끝부분의 절벽 전투 신은 장대한 전쟁 장면을 기다렸던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지난 몇 개월간 '타이탄', '아이언맨2'로 이어지던 할리우드 영화의 실망스러운 블록버스터 행진 속에 볼만한 블록버스터 한 편이 등장했다고 해도 과찬이 아니다. 칸 영화제가 이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택한 이유가 충분히 증명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사례는 2006년 '다빈치코드', 2009년 '업'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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