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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던 일인데도 눈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상대는 다름 아닌 지뢰. 방탄복과 지뢰덧신 등으로 무장한 공병들이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내딛는다. '아차' 하는 순간에도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아찔한 전선(戰線)이다. 지뢰와의 싸움 지난달 26일 오후 2시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도로변. 올해 4월 20일부터 지뢰제거 작전에 돌입한 육군 6군단 예하 6공병여단이 중장비를 앞세워 지뢰지역에 진입했다. 커다란 집게를 단 굴착기가 경사로의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내 뒤편으로 옮겼다. 뒤따라 식별조가 굴착기에 부착된 역방향 버킷 위에 올라타 천천히 다가갔다. 폭발에 대비해 굴착기 조종석은 두꺼운 철판을 둘렀고, 식별조도 강화플라스틱 보호막 뒤에서 육안으로 지뢰 유무를 살폈다. 잠시 뒤 지뢰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제거조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굴착기는 주변 땅들을 조금씩 떠냈고, 공압조는 공압기로 표토를 제거하며 지뢰 유무를 점검했다. 탐지조가 마지막으로 지뢰탐지기로 확인을 하고 나서야 삼곶리 51개 구획 중 한 구획에 대한 작전이 끝났다. 뙤약볕 아래 공병들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군이 삼곶리 작전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미확인 지뢰지역이기 때문이다. 11월 말까지 삼곶리(2만6,000여㎡)와 중면 답곡리(3만여㎡)에서 동시에 지뢰를 제거하는데, 답곡리에는 1961년과 80년 일명 발목지뢰로 불리는 M14(대인지뢰), M15(대전차지뢰) 등 1,600여 발의 지뢰를 매설했다는 기록이 있다. 반면 삼곶리는 지뢰가 나온 사례가 있을 뿐 매설기록이 없다. 삼곶리에서는 지뢰제거 작전이 진행된 한달 남짓 동안 서너 발의 대인지뢰가 발견됐다. 긴장이 생명이다 이번 지뢰제거 작전은 군남댐을 건설하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댐으로 인해 수몰지역과 3번 국도 우회도로 건설지 등에 대한 지뢰제거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작전이 끝나면 답곡리는 훈련장으로, 삼곶리는 농경지로 각각 활용된다. 지뢰제거는 생명과 직결돼 있어 공병들도 상당한 심적 부담을 갖는다. 더구나 삼곶리와 답곡리는 평지, 하천, 경사지 등이 고루 있어 각기 다른 방법으로 탐지해야 하는 만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됐다. 그래서 공병들은 작전을 앞두고 체력단련, 장비훈련, 정신교육을 받았고, 단체로 생명보험에도 가입했다. 지휘부는 대원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고, 기후에도 신경을 쓴다. 비가 내리는 날이나 긴장이 풀릴 수 있는 혹서기에는 작전을 하지 않는다. 6공병여단 관계자는 "지뢰제거에서 자만은 금물"이라며 "안전 불감증을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 경험을 쌓은 중대 대신 올해는 다른 중대가 교대로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전은 민간인통제선 밖이라 군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수막과 안내간판을 설치하고, 근무자를 배치해 민간인 출입을 막고 있다. 지뢰를 발견해도 바로 폭발시키지 않고 스티로폼을 안에 덧댄 상자에 넣어 폭발물 처리반에 인계한다. 지뢰천국 대한민국 비무장지대(DMZ)는 전 세계에서 지뢰밀도가 가장 높은 지뢰밭이다. 분단 뒤 남한에서만 105만여 발을 매설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기록이 남은 것들만 추린 수치다. 우리 군이 묻은 숫자도 파악이 안될 정도여서, 북한이 매설한 지뢰 규모는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DMZ 일대 뿐 아니라 민통선 아래 후방지역에도 지뢰는 산재한다. 국방부가 올해 1월 제출한 지뢰제거법안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 계획된 지뢰지대는 1,100여 곳으로 면적은 2,000만㎡에 이른다. 기록이 없는 미확인 지뢰지대는 209곳으로, 무려 9,782만㎡에 달한다. 군은 중장기계획에 따라 점진적으로 지뢰를 제거할 계획이지만 현 수준으로는 미확인 지뢰를 제거하는 데만 490년이 걸린다. 군도 한계를 인정하고 필요성이 없어진 지뢰를 민간업자가 제거할 수 있도록 관련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조재국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는 "우리 땅의 지뢰는 가장 비인도적이고, 탐지가 어려운 플라스틱 발목지뢰가 대다수"라며 "이런 지뢰들을 탐지해 완벽히 제거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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