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동계올림픽, 6월 지방선거, 6~7월 월드컵, 9월 인천 아시안게임. 이벤트가 아니다. 6개월 전 새해 달력을 보며 출판인들이 꼽은 '2014년 책이 안 팔릴 이유'다. 인기 드라마의 간접광고(PPL)로 책이 간접 노출되지 않으면, 영화의 원작이 아니면, 저자가 TV에 나오지 않으면, 높은 선인세로 사들인 유명 작가의 작품이 아니면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출판계의 상식으로 굳어졌다지만 2014년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단단히 마음들을 먹고 있었다.
몇 해를 출판계에서 보내며 전 국민의 축제를 응원할수록 책이 팔리지 않음을 실감했다. 국가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책은 주춤했다. 사람들은 주말에도 서점에 나오지 않았고 북섹션은 묻혔으며 인터넷과 SNS에서는 책이 등장할 틈이 없었다. 이 시국에 그런 한가로운 이야기를 하느냐는 핀잔은 '책 읽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샌님이란 말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것도 이 사회의 한 단면이고 문화이므로.
2014년, 출판 불황과 비극은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전 국민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품고 살아야 할 세월호 침몰 사고는 모든 이슈를 끌어들이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책 만드는 이들이 만드는 책과 책 만드는 행위 자체에 회의를 품게 만들었다. 유난히 정서적 감응과 '올바름'에 대한 추구가 큰 이들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는 괴로워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만드는 것이 구명조끼만큼 쓸모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땅에서 '텍스트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책이 시대의 등불이라던 시절이 있었다. 책을 읽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 서점 판매 역시 줄었다. 편집자들은 마감하던 손을 놓고 가만히 원망스러운 바다와 이름 모를 아이들을 떠올려본다. 책은 본디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는 가장 뛰어난 매체였다. 하지만 가르칠 것도, 가르쳐줄 방법도 없는 사회라면 이 모든 만듦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을 만드는 오늘이 부끄러움으로, 슬픔으로,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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