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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 대한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집행이 또다시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또 다른 재정위기 국가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행보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국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혹독한 재정긴축에 대한 요구를 받고 있으나 실제 허리띠를 졸라매는 속도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탈리아가 마리오 몬티 총리의 리더십 아래 긴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반면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이끄는 스페인은 다음달 지방선거를 앞두고 긴축실행을 미적거리고 있다.
물론 이들 국가의 사정이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중은행에 공급한 4,890억유로가 국채시장으로 흘러들면서 양국의 채권값은 꾸준히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 대책의 약발이 다할 경우 긴축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나라는 시장의 신뢰를 잃어 '제2의 그리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스 '불신의 위기'=의회의 긴축안 승인으로 구제금융을 위한 큰 산을 넘은 듯했던 그리스는 또다시 장애물을 만났다. 장클로드 융커 유로그룹 의장은 14일(현지시간) 성명을 내 "15일 열릴 예정이던 유로존 재무장관회의를 전화회의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그리스 정치권이 유로존에서 제시한 요구사항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스에 구제금융 1,300억유로를 지급할지 아직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무장관들이 시장의 기대를 깨고 구제금융 최종 승인을 연기한 것은 결국 그리스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로이터는 "그리스는 금융위기를 겪을 때마다 긴축에 나서겠다며 유럽에 손을 벌렸지만 약속들은 번번이 깨졌다"고 이날 지적했다.
융커 의장 등 재무장관들은 그리스 1ㆍ2당인 신민당과 사회당에 오는 4월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긴축을 이행할 것이라는 내용의 확약서를 요구하고 있지만 안토니스 사마라스 신민당 당수는 "총선 이후 긴축안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유로존의 한 고위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독일과 네덜란드 등이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며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점점 다가서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적대는 스페인 대 긴축 속도 내는 이탈리아=다음 위기국으로 거론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행보는 완전히 엇갈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스페인이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로이터는 "스페인이 긴축안 실행을 미뤄 EU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이날 EU 집행위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스페인 정부는 3월25일 안달루시아주 지방선거를 의식해 올해 긴축예산도 확정하지 않고 있다. EU는 라호이 총리가 긴축을 미뤄 자신이 속한 국민당의 승리를 유도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집행위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의 올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9%선으로 예상돼 이탈리아(2.3%)를 훨씬 뛰어넘는 것은 물론 EU의 상한선인 3%보다도 높다.
반면 이탈리아는 긴축에 점차 속도를 내면서 국채금리가 떨어져 해외 투자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현지 안사통신은 몬티 총리가 이날도 노동계 대표자들과 만나 고용조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개혁조치를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의회는 지난해 말 300억유로 규모의 긴축안을 최종 승인하기도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같은 상반된 흐름의 결과로 올 초 200bp(1bp=0.01%)까지 벌어졌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10년물 국채금리 격차는 14일 28bp로 좁혀졌다. 이탈리아보다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스페인 국채가 점점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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