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이후 4년 만에 발행되는 그리스 국채(5년물)에 모집금액의 4배가 넘는 투자자금이 몰렸다. 지난 재정위기로 두 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았던 그리스의 성공적 복귀는 경제 펀더멘털 개선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최근 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 등 대내외적 요인이 두루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날 그리스 재무부가 성명에서 조만간 5년 만기 국채를 발행할 것이라고 밝힌 후 도이체방크·골드만삭스·JP모건 등 주관사 창구를 통해 110억유로(약 15조8,400억원)의 주문이 몰렸다. 발행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그리스 방문 하루 전날인 10일 25억유로 규모의 채권발행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스 국채발행은 2010년 재정위기가 촉발되면서 유럽중앙은행(ECB)·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의 구제금융을 받은 후 4년 만에 처음이다.
모집 예상액의 4배가 넘는 돈이 몰릴 정도로 투자자들의 인기를 끌면서 그리스 정부는 당초 전망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 2010년 마지막 발행 당시 6%를 넘었던 점을 감안해 이번에도 6% 안팎에 발행금리가 결정될 것으로 관측됐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5.0~5.25% 또는 이보다 더 낮은 금리가 적용될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4년 만에 글로벌 자본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리스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빚덩이 국가 너머의 그리스 경제를 볼 준비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자본시장 복귀 소식이 전해진 후 그리스 10년물 또한 0.269%포인트 급락하며 4년 만의 최저 수준인 5.890%까지 떨어진 점은 경제 펀더멘털 개선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의미다.
최근 ECB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저인플레이션을 타파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식 양적완화(QE)에 나설 수 있다는 소식도 그리스 국채의 흥행에 도움이 됐다. ECB가 실제 QE에 나설 경우 재정위기 국가들의 채권이 주된 매입 대상이 돼 지난 재정위기의 주범국들인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만으로 그리스 경제가 정상화됐다고 선언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리스의 공공 부문 채무는 2012년의 구조개혁 이후에도 국가경제 규모(GDP) 대비 175%에 이른다.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 수치가 각각 67%, 47%에 불과한 점을 감안할 때 그리스의 국가채무는 여전히 부담스런 수준이다. 여기에 정부의 재정긴축 정책에 반발하는 노동조합의 시위 및 파업으로 이날도 그리스 전역의 대중교통 및 학교 업무가 부분 정지되는 등 정치·사회적 불안도 심각하다.
애버딘애셋매니지먼트의 요제프 자보는 "만약 위기상황이 다시 한번 닥친다면 그리스는 분명히 유로존에서 가장 취약한 국가"라며 "그리스는 여전히 심각한 구조적 이슈와 사회·정치적 문제를 안고 있으며 부채의 지속성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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