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중국과 러시아의 KADIZ 침범은 지난해 12월 우리 정부가 KADIZ를 이어도를 포함한 지역까지 확대 선포한 것을 무시한 행위요, 안보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므로 강력하고도 신속한 대응이 요구됐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실망 그 자체였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늑장을 부린 징후마저 읽힌다. 국방부는 중국이 해사국 홈페이지를 통해 연합군사훈련 지역을 항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한 지 4일이나 지난 20일 오후에야 주한 중국무관을 불러 중·러 연합훈련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주말이 겹쳐 대응이 늦어졌다"는 군의 설명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국토방위에 어떻게 주말이 따로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중·러의 KADIZ 침해 사실을 미리 확인하고도 군사훈련 지역 일대를 지나는 한국 유조선이나 상선 등 선박 안전을 위한 공지를 일절 하지 않은 외교부의 미온적인 자세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과 러시아가 동중국해 연합훈련구역을 KADIZ까지 넓힌 건 미일 공조체제가 견고해지고 있는 상황과 맞물린 포석으로도 읽힌다.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 간 갈등격화로 동북아시아 정세가 크게 요동치는 상황에서 한중일 ADIZ가 중첩되는 이어도 일대에서 우발적 충돌이라도 벌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 중국 또한 KADIZ 침범 자체가 국제 도의를 저버린 대국(大國)답지 못한 졸렬한 처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행동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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