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는 질병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건강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해 두면 몸이 아플 때 건강보험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직장가입자의 경우 젊을 때는 몸이 좀 아파도 참고 일 하면서도 건강보험료는 꼬박꼬박 낸다. 나이 들어 은퇴하면 병원 갈 일이 많으니 건강보험료는 잘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은퇴를 하고 나면 소득이 없어도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아끼고 아껴 장만한,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아파트 한 채 때문이다.
최근 건강보험공단에 접수되고 있는 대표적인 이의신청 사례이다. 소득 수준, 납부 능력과 무관하게 재산만 있으면 이른바 '보험료 폭탄'을 부과하는 건강보험 정책으로 인해 매달 수십건이 넘는 이의신청이 제기된다고 한다.
소득이 많으면 사회에 더 기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개인의 지불의지나 부담능력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강요한다면 이는 '사회보험'이 아니라 '조세'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가장 많이 내는 사람과 가장 적게 내는 사람 간의 격차가 279배에 달한다. 일본의 10배, 독일의 8.7배, 대만의 5.5배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이며, 건강보험이 사회보험을 넘어 '부유세'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에는 직장가입자의 금융소득, 사업ㆍ임대소득, 연금소득 등 종합소득에까지 보험료를 부과하는 정책이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르면 직장가입자는 의료이용도에 상관없이 근로소득 이외의 소득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보험료를 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직역 간 보험료 부과체계를 일원화한다는 것인데, 형평성의 원칙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다.
낮은 소득파악률 때문에 일부 고소득 지역 가입자에 대해서는 당연히 걷어야 할 보험료도 걷지 못하고, 첨예한 이익단체의 압력 때문에 제대로 된 지출효율화도 이루지 못하면서 직장가입자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의료서비스의 적극적인 수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소득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당장 건강보험 재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운영의 형평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제도의 지속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고민해야 할 것은 공정성과 형평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수입 늘리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지출효율화 등을 통해 건강보험이 지속 가능한 제도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