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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5월14일] 루이스·클라크 탐험대


1804년 5월14일, 세인트루이스.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의 하천용 수송선이 미주리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돛을 올렸다. 승선 인원은 62명. 군인이 대부분인 탐험대를 주민들은 열렬히 배웅했다. 최초의 서부 탐사였기 때문이다. 탐험을 기획한 주인공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루이지애나 매입(1803년 12월)이 구상되기 1년 전부터 예산 2,500달러를 요구할 만큼 관심이 컸다. 탐험대장에는 신뢰하는 개인비서 루이스 대위를 앉혔다. 왜 그랬을까. ‘북서항로’를 찾기 위해서다. 북서항로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갈 수 있는 수로. 콜럼버스 이래 상상과 기대 속에서 존재했던 항로다. 제퍼슨은 항로를 찾아내 캐나다의 전유물인 모피시장은 물론 유럽이 독점하는 중국과의 무역에도 끼어 들기 원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북서항로를 못 찾은 것이다. 당연하다. 로키산맥이 버티고 있으니까. 천신만고 끝에 산맥을 넘어 태평양에 도달한 루이스 일행은 방대한 기록을 갖고 1806년 9월23일 돌아왔다. 탐험대가 2년4개월 만에 생환했다는 소식은 온 나라를 달궜다. ‘서부로 간다(go west)’는 말이 ‘죽음’을 의미하는 관용구로 쓰이던 시절, 개척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탐험의 성과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생 미국이 팽창하는 출발점으로 탐험을 꼽는 시각도 있다. 루이스의 기록은 미국이 멕시코에 서부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도 쓰였다. 북서항로보다 훨씬 큰 선물을 나라에 안겨준 셈이다. 요즘도 미국인들은 미국판 서북공정 격인 루이스와 클라크의 탐험에 열광한다. ‘둘이서 사냥해 연대 병력을 먹일 수 있을 만큼 많았다’(루이스의 일기)는 들소와 사슴, 탐험의 성공을 도와준 인디언들은 목숨과 터전을 차례차례 빼앗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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