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경찰서는 사람을 치고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도주차량)로 중국국적 유학생 L(23)씨를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L씨는 22일 오전 5시25분께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도로에 누워 자고 있던 A(37·택배기사)씨의 머리를 차로 치고 지나간 뒤 도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변을 당했다. 지나가는 시민의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게다가 사고 현장에는 용의자를 지목할 만한 별다른 증거가 남아있지 않아 사건은 미궁에 빠질 뻔 했다. 현장에 설치된 CCTV가 없었으며, 비가 왔던 탓에 사고 흔적을 발견하지 쉽지 않았다. 목격자도 차량번호나 정확한 차종을 기억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고심 끝에 경찰은 형사 20여명을 동원해 사고 현장 주변 CCTV 70여대를 샅샅이 뒤졌다. 이후 사고 시간대에 주변을 지나갔던 차량 45대를 용의선상에 올린 뒤 해당 차량들의 동선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경찰의 수사망은 사고 시간 대에 인근을 지난 은색 벤츠 차량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이 차량의 움직임을 다시금 파악한 뒤 사고 직전 벤츠 차량의 L씨가 인근 아파트에 한 여성을 내려주고 돌아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결국 이 여성을 통해 L씨의 소재 등을 파악한 뒤 사고 80시간 만에 L씨를 자택에서 검거할 수 있었다. 차량 하부에는 A씨의 혈흔도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L씨는 5년 전 한국에 들어와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같이 차에 있던 여성은 중국 국적 약혼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L씨는 경찰에서 "충격을 느끼고 20∼30m 주행했다가 돌아와 현장을 봤지만 쓰레기봉투인 줄 알고 그냥 돌아갔다"며 "일부러 현장에서 도주한 것은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차량 창문을 내리고 사고 현장을 보고서 지나갔다'는 목격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L씨를 구속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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