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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듐, 셀레늄, 인듐, 디스프로슘, 페로크롬, 페로몰리브덴… 생소한 이름의 이 물질들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통칭은 희소금속. 전기자동차ㆍ전자제품 등 첨단산업에 꼭 필요한 원료다. 예를 들어 디스프로슘은 자석의 내열성(耐熱性)을 높여줘 하이브리드 또는 전기자동차의 모터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 인듐은 LCD패널이나 투명 전극 등에 없어선 안 될 물질이다. 또 셀레늄과 함께 태양전지 생산에 쓰이기도 한다. 페로크롬과 페로몰리브덴은 철강의 산화방지 역할을 한다. 백금과 비슷하게 생겨 액세서리용으로도 활용됐던 팔라듐은 휴대전화ㆍ컴퓨터ㆍLCDㆍ자동차 등 쓰임새가 다양하다. 팔라듐은 금ㆍ은ㆍ백금과 함께 통화가치도 있는 것으로 여겨져 국제표준기구(ISO)의 통화 코드(ISO 4217)로도 지정돼있다. 문제는 희소금속들은 이름만큼 매장량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점. 차량 한 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디스프로슘의 양은 고작 75그램에 불과하지만, 아직까지 디스프로슘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은 없다. 희소금속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차세대 성장의 성공 여부를 가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 희소금속 '싹쓸이' 태세= 한반도의 반대편인 남아메리카의 소국 볼리비아에 위치한 세계 최대 소금사막인 '살라르 데 우유니(Salar de Uyuni)' 주변에서는 중국과 일본,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이 리튬이라는 희소자원 확보를 둘러싸고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황량한 소금벌판인 이 곳에 전기자동차ㆍ휴대전화ㆍ컴퓨터 배터리 등의 핵심재료로 쓰이는 리튬이 전세계 매장량의 절반가량 매장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비롯해 중국, 프랑스 등지의 기업들은 살라르 데 우유니의 리튬 개발권을 얻기 위해 볼리비아 정부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 스미토모 그룹 등은 볼리비아 정부의 리튬 개발에 재정적ㆍ기술적 지원을 해주기로 합의한 상태다. 중국은 한술 더 떠 무기 판매라는 외교적 미끼로 볼리비아 정부를 유혹하고 있다. 중국에는 전세계 매장량의 10%에 달하는 리튬이 묻혀 있지만, 볼리비아까지 포섭하면 리튬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경제력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권력까지 희소금속에 달려 있는 셈이다. 살라르 데 우유니에서 드러나듯, 희소금속 확보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드는 건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중국의 존재. 중국은 현재 전세계 희소금속 매장량의 31%를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 비중은 97%에 이른다. 더 비싸게 팔 수도 있는 귀중한 자원을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마구 개발, 싼 값에 내다파는 구조였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고율의 관세 부과와 외국 기업의 진입을 막는 등의 내용이 담긴 희소금속 수출 규제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전세계 산업계에 충격적인 '비보(悲報)'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 민ㆍ관 공조 활발= 일본 정부와 기업의 노력도 눈물겹다. 일본의 대형 상사들은 최근 희소금속 확보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토추(伊藤忠)상사는 캐나다 기업과 협력해 알래스카에서 니켈과 백금을 발굴할 예정이다. 원유ㆍ석탄ㆍ철광석 등 큰 시장이 형성된 원자재 개발에만 적극적이었던 일본 상사들이 소규모인 희소금속 개발에까지 나서는 건 그만큼 시장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는 탓이다. 도요타의 경우 자회사인 도요타 츠쇼(豊田通商)을 통해 리튬 확보에 나설 예정이다. 도요타 츠쇼의 시미즈 준조(淸水 順三) 사장은 "지금 리튬을 확보해놓지 않으면 향후 친환경 차량이 출시된 후 생산량을 맞추기가 힘들어진다"고 전했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도 희소금속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말 해외에서 희소금속을 개발하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 프로그램을 내년 3월부터 실시키로 했다고 밝혔다. 해외 희귀금속 매장지 부근의 도로나 철로 등 인프라 확충에 사용하는 용도의 자금을 대출해줘 해당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아프리카 국가 등은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어도 인프라가 미비해 개발에 착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희소금속 재활용도 관심을= 상황이 이쯤 되자 희소금속 재활용에 눈을 돌리는 이들도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각종 가전제품 등에 들어가 있는 희소금속을 수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도시에서 이들 금속을 다시 캐낸다는 의미에서 '도시광산 개발사업'으로도 불린다. 버려진 컴퓨터, TV 등에서 금 등을 뽑아내 재활용하는 게 차라리 비용이 덜 든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일본에서 버려진 상태인 인듐은 세계 매장량의 15.50%에 달한다. 초강도 공구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탄탈도 10.41%에 이르는 양이 버려져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희소금속을 포함해 광물자원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 역시 희소금속 비축량을 늘리고 있다. 조달청은 지난 6일 실리콘, 리튬 등의 비축량을 7월 말까지 9,611톤 늘려 재고량이 1만8,821톤(국내 수입수요 37일분)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조달청은 연말까지 재고량을 2만7,730톤(46일분)으로, 2011년까지 3만7,644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폐휴대폰ㆍ폐자동차 등에서 희소금속을 체계적으로 수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희소금속은 부존량이 희소하다는 이유 자체로 거래가격이 꾸준히 오를 전망이다. 여기에다 런던금속거래소(LME)가 내년부터 희소금속의 선물거래를 허용할 계획이어서 이에 대한 투기거래가 횡행할 경우 가격폭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희소금속은 현재 현물 거래만 이뤄져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이 가격 상승을 부추길 여지가 없다"며 "그러나 글로벌 경기회복과 선물거래 허용이 맞물릴 경우 희소금속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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