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정보통신ㆍ가전기기들이야 기능도 모양도 다르지만 해체해놓고 보면 반도체 조합이기는 매한가지이고 전기신호로 움직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유ㆍ무선 통신망이 전세계 어디에나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디지털 컨버전스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이렇게 디지털 컨버전스를 통해 인류가 융합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지만 사실 넓은 의미의 융합은 유사 이래로 인류발전의 동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조가 순전히 신의 활동이라면 인간의 발명이나 발전은 결국 기존의 것(신의 창조물)을 모방하거나 나누거나 합치는 활동, 다시 말해 재창조를 위한 과정일 뿐이며 따라서 문명 발전의 공(功)중 상당 부분은 융ㆍ복합에 돌아가야 한다. 다만 시대 흐름이나 해당 분야에 따라 전문화가 발전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융합이 발전으로 이해되기도 할 뿐이었다. 사슴의 뿔, 뱀의 몸, 잉어의 비늘, 호랑이의 발, 매의 발톱을 형상화하여 고대로부터 용을 신성시한 것도 낮은 단계의 융ㆍ복합 활동이었으며,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 회왕 때 어느 하인이 술내기에서 뱀에 다리를 그려 넣은 것(화사첨족ㆍ畵蛇添足)은 실패한 융ㆍ복합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앞의 사례만으로 산업계의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는 현대적 의미의 융합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분리돼 있던 두개 이상의 요소들이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하나의 요소로 수렴되는 현상 또는 이러한 양상을 따르는 모든 사회ㆍ경제적 현상”을 융합이라 하는데 좀 더 쉽게 접근해보자. 융합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해지는 일”로 정의된다.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계적 결합(結合)이나 조합(組合)과 구별되고 화학적 반응에 의한 열의 발생은 사회적 경제적 개념에서 보면 융합으로 인한 시너지(synergy)효과나 고부가가치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개념에서 볼 때 좁은 의미의 융합화를 실천했던 사람들은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들이 아닌가 한다. 그들이 유황ㆍ수은 등을 섞어서 고부가가치의 금(金)이나 영약(靈藥)을 만들려고 한 것은 정보기술(IT) 등의 신기술과 전통산업을 융합해 기존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현재의 융합과 대동소이하다. 아울러 연금술사가 금 제조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졌던 것처럼 현대의 융합 또한 구체적인 편익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신가치 창출을 목표로 해야만 한다. 덧붙여 중세의 연금술이 타깃을 정하고도 여기에 이르는 방법이 잘못돼 실패했다는 역사적 교훈은 21세기 한국이 융합에 성공하려면 보다 면밀한 이행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소비자에 구체적 편익 제공해야
따라서 정부는 산업융합발전의 로드맵 제시를 위해 치밀한 준비에 돌입했으며 산업융합기술 분야의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산업계도 선진국의 융합 트렌드를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융합이 제품 간, 기술 간 결합을 넘어서 산업ㆍ서비스·시장이 서로 교차 결합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새로운 제품, 기술, 산업, 서비스ㆍ시장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확장되는 융합의 개념만큼이나 미래 한국 경제 성공의 열쇠는 융합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 연금술이 성공해 우리 경제가 노다지를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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