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23일(현지시간) 최후의 수단인 유럽연합(EU)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선택한 것은 더 이상 자체적인 자금조달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EU와 IMF는 지난 12일 그리스가 요청할 경우 구제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합의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리스는 자구노력을 통해 재정난을 헤쳐나가겠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리스 국채 값이 폭락(수익률 폭등세)하자 결국 고집을 꺾었다. 23일 그리스의 EUㆍIMF 지원 요청 소식이 발표되기 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장중 한때 9.03%까지 치솟았다. 이는 그리스가 유로권에 가입한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독일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전날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A2에서 투기등급 바로 윗등급인 A3로 강등한 것도 타격이 컸다. EU 산하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도 그리스의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13.6%(기존 12.9%)로 수정해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유로존 회원국들의 GDP 대비 재정적자 상한선은 3%다. 결단을 내린 그리스는 최대한 빠르게 자금지원을 받아 재정난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게오르게 파파콘스탄티누 그리스 재무장관은 "수일 내로 구제자금을 지원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EUㆍIMF도 애초 1~2주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깨고 최대한 신속히 그리스에 자금을 지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리스 지원에 대해 내부적으로 반대 여론이 거센 독일 등에서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등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리스 지원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아직 구체적인 자금지원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EU 회원국들이 이미 합의한 바를 볼 때 EU는 3년짜리 차관의 경우 약 5% 금리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EU는 총 450억유로의 구제자금 중 300억유로를 담당하기로 결정했었다. IMF는 이보다 더 낮은 금리로 그리스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EU와 IMF가 그리스에 구제의 대가로 어떤 요구조건을 내걸지도 관심사다. 그 핵심은 채무조정 및 재정감축의 폭이다. 그리스는 이미 올해 재정적자를 GDP 대비 4%로 감축하기로 하면서 공무원 임금 동결 등의 방안을 내놓았지만 국민들이 이에 반대하며 시위와 파업을 벌여왔다. 시장은 그리스 사태가 일단락됐다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유럽 각국 증시는 23일 오전장에서 일제히 상승세를 보였다. 그리스에 물린 자금이 많은 독일과 스페인 증시는 장중 한때 1%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EU와 IMF가 나서기로 가닥이 잡히면서 그리스 재정난에 따른 불안감이 옅어졌다는 의미다. 그리스 10년물 국채 수익률도 한때 8% 초반까지 떨어지면서 일주일 만에 하락세를 보였다. 23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던 유로화 가치도 유럽 환시에서 반등했다. 시장조사업체 마킷의 거밴 놀런 애널리스트 등은 이에 대해 "그리스의 재정적자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구제방안에 따라 시장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