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명사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제품이나 브랜드 이름이 품목이나 분야를 통칭하는 대표가 되는 경우다. 골프존도 이런 사례 중 하나다. 스크린골프의 역사는 1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골프하는 사람 중 '스크린골프 가자'는 말 대신 '골프존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70%대의 높은 시장점유율, 이용자 마음을 사로잡은 마케팅과 브랜드 파워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골프존 태풍의 중심에 김영찬(65ㆍ사진) 사장이 있다. 삼성전자 시스템사업부장을 역임했던 김 사장은 퇴직하기 3년 전인 지난 1990년에야 뒤늦게 시작한 골프가 '인생 2막'을 열어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른바 '700 정보 전화'로 불린 부가통신 사업을 시작해 7년여 동안 작은 성공을 일구던 그는 IMF 외환위기와 함께 당시 사업분야가 음란ㆍ퇴폐의 방향으로 흐르면서 벽에 부딪히게 된다. 50대 중반의 가장으로서 또 새로운 창업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엄청난 불안과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의 일만 같았던 전화위복이 그에게도 찾아왔다. "개인 사업을 하면서 골프 칠 일이 많아졌습니다. 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 무렵부터 업종 변경을 생각하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내가 알고,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지요." 2000년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한 것이 골프 시뮬레이션이었다. "당시 10년간 골프를 치면서 연습장과 실제 골프코스의 차이가 크다고 느꼈다"는 그는 "연습장과 코스의 중간에 코스 플레이 능력을 배양하는 새로운 도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시뮬레이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김 사장의 승승장구 '50대 창업' 도전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골프를 좋아하고 정보통신 분야 경력이 있고 마침 정보기술(IT) 쪽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1년 반 동안 개발에 매달려 2002년에 스크린골프를 선보였지요. 첫해 매출은 10억원이었지만 한일 월드컵 축구 등으로 골프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듬해부터 20억원, 30억원, 2005년 50억원으로 매출이 불어났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하면서 커지는 것은 기쁨보다는 갈등이었다고 한다. "노후 대비 차원에서 가족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골프방 창업에 전재산 3억~4억원을 투자하는 점주들이 생기니까 소일거리로 여기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영업에서 기업의 대열로 가야 한다고 작정하게 된 시기였습니다." 갈등 끝에 마침내 '매출 1,000억원대 기업인'을 향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김 사장은 기업 이념ㆍ비전ㆍ가치ㆍ룰 등을 정립해 기업의 골격을 갖춰야 더욱 성장할 수 있는 회사의 초석이 마련된다고 확신했다. 간부 직원들과 소통을 통해 전직원이 뜻을 함께했다. "대기업 사업 분야의 책임자로서 경험과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김 사장은 설명했다. 매출은 2007년 314억원에서 2008년 3배가 훌쩍 넘는 1,009억원을 돌파해 마침내 '매출 1,000억원대 기업'에 올랐고 2009년 1,400억원, 지난해에는 2,080억원을 찍었다. 2007년 수출 백만불탑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고용ㆍ매출ㆍ수익성 부문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고 2009년에는 스포츠산업대상 대상으로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10년 전 10여명 안팎이던 직원 수는 이제 40배가 넘는 450여명에 이른다. 골프존의 폭발적인 성장을 행운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주일의 이틀은 서울 사무소, 이틀은 대전 본사, 이틀은 매장 방문으로 쪼개어 쓰는 김 사장은 "재미와 플레이의 경계선에 존재하는 이용자들의 미묘한 니즈를 충족시키려 한다"며 "10년을 하루같이 고객이 현재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원할지 고민하고 그 고민을 제품력 강화에 쏟아온 결과"라고 힘주어 말했다. 새로움은 반성과 창의력에서 탄생된다고 믿는 그는 잠들기 전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매일 아침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일이 습관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이런 메모를 e메일로 직원에게 전달, 공유했으며 지난해에는 이를 책으로 묶어 발간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골프에서 경영을 배우고 경영에서 골프를 배운다"고 강조한다. "기업은 도전하는 조직이고 골프도 도전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상통한다"는 그는 "1번홀에서 파 세이브에 실패하면 2번홀에서 다시 자신의 스윙을 점검해 코스와 자연에 도전하고 한 라운드 동안 이런 도전을 18번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박이' 이론이 이어졌다. "기업과 골프는 모두 거리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거리가 짧아도 방향만 맞으면 1타 손해에 그칩니다. 하지만 거리가 길어도 방향이 잘못되면 OB다 해저드다 해서 3~4타 잃기 십상이에요. 경영자와 구성원이 한 방향을 향해 가야 합니다. 거리가 짧고 방향성 좋은 골퍼가 무서운 법입니다. 방향성 없는 기업은 100타를 못 깹니다." 구력 20년에 핸디캡 12인 김 사장은 "신기하게도 내 골프 컨디션과 회사 컨디션이 함께 간다.골프가 잘 될 때는 겸손하고 잘 안 될 때는 회사 프로젝트를 큰 틀부터 다시 점검하며 좀더 신중을 기한다"며 인생 2막을 열어준 골프와의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올핸 항공촬영 통해 오차 줄이고 OB·해저드라인 현장감 극대화 브랜드 파워 내세워 사업 다각화도 골프존의 생명력은 '새로움'으로 표현된다. 골프 시뮬레이션은 미국에서 10여년 전 스윙 분석과 레슨 용도로 먼저 개발됐고 골프의 역사는 기록에 남은 것으로만 봐도 600년이 넘는다. "스크린골프는 원작에서 파생된 아류"라고 인정하고 들어간 김영찬 골프존 사장은 아류가 원류를 능가하려면 새로움의 창조가 필수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몇 년 전 남극 세종기지에 골프존 시스템을 설치하자 인근 기지의 외국인 과학자들이 찾아와 킹조지 섬의 명물이 됐다. 그만큼 골프방 자체는 새로운 것이지만 계속해서 새로움을 창조하지 않으면 원작보다 빨리 식상할 수 있다는 것이 김 사장의 생각이다. 골프존은 올해 새로운 버전의 '리얼(Real)'을 선보였다. 항공 촬영을 통해 실제 골프장과의 오차를 거의 없애는 등 그래픽을 향상시키고 OB와 해저드 라인을 현실화해 현장감을 극대화했다. 골퍼들이 필드에서 즐기는 스킨스나 변형 라스베이거스(속칭 뽑기) 등 다양한 게임 방식도 추가했다. 상반기 중에는 실내연습장 전용 시뮬레이션을 출시해 매출 감소에 시달리는 연습장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킬 계획이다. 가격은 기존 골프방 버전보다 훨씬 저렴하면서 뛰어난 스윙 분석과 레슨 기능을 갖추게 된다. 이용객(회원)이 늘어나고 골퍼들은 레슨과 서비스에서 만족감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김 사장의 새로움 찾기는 계속된다. 조만간 키즈용ㆍ가정용 골프 시뮬레이터를 만들 예정이고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게임에 익숙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골프와 친숙해질 수 있도록 골프를 소재로 한 온라인 게임 개발도 준비하고 있다. 브랜드 파워를 기반으로 장갑과 신발ㆍ의류 등으로 다각적인 사업을 펼치겠다며 식지 않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세상에 없던 일을 하고 있는 우리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는 우리도 다 알지 못한다"는 그는 "전세계에 골프존 제품이 보급되고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요즘 대세인 '소셜네트워크'의 측면에서도 활용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부가적인 사업ㆍ가치ㆍ콘텐츠가 생겨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움의 근본은 창작이고 창작의 원천은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450여명에 이르는 골프존 직원의 평균 연령은 32세가 채 되지 않는다.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사람이 채용의 첫째 기준"이라는 그는 "그런 사람이 많아야 경영자가 어떤 프로젝트를 맡기고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김 사장은 스크린골프 분야를 이끄는 선도 업체로서 역할론도 강조한다. 최근 새 버전 출시 과정에서 그는 일부 매장 점주들로부터 상권 보호 요구를 받기도 했다.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이용해 기존 제품에서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던 15개 코스를 모두 없앴고 문어발식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는 요지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골프존은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일 뿐이고 매장과는 상권 보호 의무가 있는 가맹사업관계가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상권 보호'가 아닌 '상권 활성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적인 제품 업그레이드와 다양한 이벤트 실시, 광고 홍보 등을 통해 스크린골프 인구와 라운드 횟수가 늘어나도록 지원하면 결과적으로 매장의 수익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매장 경영주 가운데 20명을 전문위원으로 위촉하고 수익성을 높일 건설적인 아이디어에도 귀를 기울일 방침이다. 골프방의 포화 현상에 대해서도 "올해부터는 전체 라운드 수와 총 시스템(시뮬레이터) 수를 수시로 분석해 시스템 수의 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날 때에는 출하 물량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크린골프 전체 시장은 지난해 말까지 매장 수 3,500개, 시스템(시뮬레이터) 2만대, 연매출 1조 2,000억원, 고용효과 3만명을 기록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산업의 성장세에 힘입어 골프존은 기업 공개를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해 말 연기됐던 골프존에 대한 코스닥 상장 심사가 오는 3월께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해외 시장 개척도 본격화해 세계 100대 도시에 골프 시뮬레이터가 있는 비즈니스ㆍ문화 공간의 형태로 1억달러 수출을 달성하는 것이 1차 목표"라는 김 사장은 "남녀노소를 아우를 수 있는 전방위적인 즐거움과 유익함을 제공하는 문화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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