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11월1일 새벽 프랑스령 알제리. 곳곳에서 요란한 폭음과 총성이 울렸다.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이 이끄는 독립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프랑스는 즉각 군대를 보냈다. 인도차이나에서 쫓겨난 지 불과 6개월여. 더 이상 식민지를 잃을 수 없다고 판단한 프랑스는 온 힘을 기울였다. 알제리에 석유부존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강경 대응을 낳았다. 한창때 프랑스군의 병력은 46만명. FLN 게릴라는 불과 4만여명으로 맞섰다. 장비와 병력의 절대적인 열세에도 알제리인들은 총을 든 지 8년 만인 1962년 3월 독립을 이뤄냈다. 프랑스의 사실상 항복이 있기까지는 ‘행동하는 지성’들의 힘도 작용했다. 사르트르를 비롯해 프란츠 파농 등 프랑스 지식인들이 인류적 양심에 호소하며 프랑스군의 압제와 고문ㆍ학살행위를 세계에 알렸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도 알제리 전쟁을 단골 소재로 작품을 썼다. 알제리는 독립전쟁 중 자국을 도운 유일한 외국인 북한과 아직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알제리인 100만여명과 프랑스군 2만,5000여명이 목숨을 잃은 끝에 이뤄진 알제리 독립은 현대사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1958년 프랑스 4공화국 정부가 붕괴되고 ‘위대한 프랑스’를 위해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를 주창한 드골이 5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프랑스에서 2005년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폭동을 일으킨 이슬람 청년들도, 축구선수 지단도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 편에 섰다 조국을 떠난 알제리인들의 후손이다. 빈약한 무장의 이슬람 전사가 현대 서방군대를 무찌른 최초의 사례인 알제리 전쟁 발발 54주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다른 무자히딘들이 미국과 싸우고 있다. 역사는 반복될까. 아니면 다르게 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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