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새누리당과 환경부가 협의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 시행령 제정안에는 연구개발(R&D)용 화학물질의 등록을 면제하고 소량 신규 화학물질은 등록 절차를 최소화하는 등 기존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화평법은 모든 신규 화학물질과 연간 1톤 이상의 기존 화학물질을 제조ㆍ수입할 때 유해성ㆍ위해성 정보 등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규정했다. 산업계는 기업의 R&D 의지를 막고 신제품 생산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 자칫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에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이번에 확정된 당정 협의안은 이 같은 지적을 감안해 R&D용 화학물질은 현재 유해화학물질관리법과 마찬가지로 등록을 면제하기로 했다. 또 소량 신규 화학물질은 하위법령에서 간이등록 대상으로 규정해 제출자료를 최소화하고 등록통지 기간도 줄인다. 현행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서는 연간 0.1톤 이하 소량 신규 화학물질은 성분명세서와 사용용도 증명자료 등을 제출하면 유해성 심사를 면제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외에도 화학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장 외부에 미치는 악영향을 평가해 시설 설계와 설치 단계부터 이를 반영하도록 하는 장외영향평가서 작성도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시행령을 통해 사업장 규모에 따라 장외영향평가서 작성항목을 차등화하고 일정 기준 이하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업체는 취급량 증빙자료만 제출하면 장외영향평가서를 면제하도록 할 예정이다.
화학사고가 발생할 경우 매출액의 최고 5%까지 매길 수 있도록 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과징금 규정은 그대로 뒀다. 그러나 최대 과징금 처분은 계도와 경고를 했음에도 고의ㆍ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기업에 한해서 적용하기로 융통성을 부여했다. 환경부는 어떠한 위법을 저질렀는지, 외부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감안해 영업정지나 과징금 수준을 차등화할 계획이며 구체적인 과징금 부과 기준은 앞으로 대통령령에서 정할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오는 11월까지 하위법령 시안을 만들어 12월 최종안이 나올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산업계와 민간전문가ㆍ관계부처 등이 모두 참여하는 '화학물질 안전관리 민관 협의체'에서 하위법령을 논의하는 등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와 경제단체는 이번 화평법ㆍ화관법 시행령 수위 완화가 재계의 주장을 일부 반영하기는 했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면서 근본적인 법 개정을 촉구했다.
고용이 전국경제인연합회 규제개혁팀장은 "이번 당정 협의 내용은 그간 환경부가 밝혀온 입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 "화평법은 시행령 개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문제가 있다면 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팀장은 또 소량 화학물질 등록 간소화와 관련해 "심사기간을 단축하더라도 기업이 서류 준비에 들이는 기간은 변함이 없다"면서 "기업의 서류 준비 기간을 포함한 진정한 의미의 기간 단축을 시켜주지 못하면 산업 발전의 속도가 매우 늦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도 "업계가 주장한 연구개발 화학물질의 등록 면제가 받아들여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하지만 소량 물질이라도 등록 시간과 비용이 상당한 만큼 추후 협의 과정에서 등록 절차를 실제적으로 어떻게 간소화할지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사업장 매출의 5%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는 규정이 유지된 것에 대해 "이익이 많지 않은 중소기업의 경우 매출 5%의 과징금은 상당히 과한 수준"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5% 과징금을 부과할지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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