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正)과 정(正)이 부딪칠 때 비극이 생긴다.
'옳다', '그르다', '이겼다', '졌다' 등 결과는 말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나름의 상황과 관계,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인생은 꼬이고 비틀어진다. 그래서 그 오랜 시간, 우리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해바라기>(1970년작)의 주인공들처럼.
결혼하자마자 2차 세계대전에 참전, 러시아 전선으로 배치된 후 실종된 남편 안토니오(마르첼로 마르스트로 얀니)를 찾아 이탈리아에서 러시아까지 찾아가는 용감한 아내 지오반니(쏘피아 로렌).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물어물어 남편을 찾는 그녀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해바라기 밭과 수많은 무덤 위의 십자가. 이 부조화의 현실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는걸까.
마침내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만나지만, 이미 운명은 두 사람을 멀리 떨어뜨려 놓은 후였다. 착하고 아름다운 남편의 러시아 아내, 남편을 꼭 닮은 어린 딸의 미소, 바람에 펄럭이는 기저귀, 남편과 새로운 아내가 함께 잠드는 침대… 남편의 집에서 마주한 한 컷 한 컷이 지오반니에게는 날카로운 칼처럼 잔인하다. 기차역에서 마주한 남편을 피한 후 통곡하는 지오반니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주고 누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
<해바라기>에는 잘못한 사람이 없어서 더 슬프다. 새로운 가정을 꾸렸지만, 누가 안토니오를 비난하겠는가. 시베리아 벌판에서 사경을 헤매는 외국인 병사를 구해준 러시아 아내는 또 무슨 잘못인가. 한 남자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한 지오반니는 최대 피해자이지만, 그녀도 누굴 원망할 수 없다. 잘못은 오직 '전쟁'뿐이다. 그 어떤 이유로든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다. 이 영화는 소피아로렌, 마르첼로 마르스트로얀니의 명연기로 유명하지만, 45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마음이 아파오는 헨리 만시니의 영화음악(OST)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내가 이 영화에서 눈여겨본 중요한 장면이 있다. 관공서에 들려 실종된 남편의 신상을 절절하게 설명하는 지오반니 앞에서 지루한듯 낙서하는 관리가 나오는 장면이다. 누군가에겐 운명이 달린 절실한 사건도 타인에겐 아무것도 아니라는 현실이 나는 너무 무섭다. 그래서 운명은 힘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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