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인연은 운명이다. 여기서 운명이란 것은 거창한 수사가 아니다. 어찌할 수 없이 어떻게 해서라도 맺어지게 돼 있는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월하노인이라는 중국 고사성어가 있다. 중매쟁이 노인이라는 의미인데 이 고사성어에 의하면 부부가 될 사람들끼리는 빨간색 실로 서로 묶여있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다고 한다.
이들이 빨간색 실로 서로 묶여있는지는 몰라도 ‘연애의 온도’의 장영(김민희 분) 이동희(이민기 분)은 만남과 헤어짐을 수 차례 반복한다. 여자 장영은 헤어질 때 그 동안 받은 선물들을 다 부숴서 착불 택배로 부치고 데이트 때 비싼 걸 시키면 삐쳤었고 늘 데이트 때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나갔다며 남자친구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남친에게 쓴 돈이 300만원 정도 된다며 전액을 다시 달라고 억지를 부린다. 남자 이동희도 이에 질세라 비슷한 방법으로 물건을 부숴서 착불 택배로 부치고 치사한 생각에 전 여친이 달라는 300만원을 주고 만다. 이 정도면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이가 되어간다. 연애 영화라지만 싸우는 장면이 더 많은 ‘연애의 온도’. 그러나 주인공들이 왜 싸우고 왜 헤어졌는지 그 이유를 잊고 다시 만나고 또다시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는 것처럼 관객도 그들의 ‘찌질한’ 싸움은 잊고 그들이 ‘연애 중’이라는 것만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연애의 온도’는 진짜 ‘연애 영화’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얼마 전 혹은 방금 전 헤어졌다면 이 영화 ‘연애의 온도’를 꼭 볼 것을 그리고 윤종신 4집의 ‘굿바이(feat. 장혜진)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굿바이를 못 듣는다면 가사라도 읽보시길. 그리고 쿨하게 굿바이 하기보단 찌질하게 매달려보시길. 봄에 이별하는 건 독거노인보다 외로운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저마다 닮아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 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로 시작하는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이 소설을 영화한 ‘안나 카레니나’ . 안나 카레니나(키이라 나이틀리 분)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비슷하게 살아가든 저마다 불행한 이유로 불행한 가정생활을 하든 어쨌든 카레닌(주드 로 분)과 결혼이라는 인연으로 묶였다. 그런데 안나는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져 카레닌과 부부로서의 인연을 끊으려고 한다. 하지만 1870년대 러시아나 2000년대 한국이나 이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이란 개인과 개인의 가장 친밀한 관계이기도 하고 사회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집안과 집안의 문제이기도 한 까닭이다. 이혼을 하지 못한 채 안나는 브론스키와 함께 하지만 당당한 사랑으로 인정 받지 못하기에 안나의 불안은 커지고 브론스키에 대한 의심도 이에 비례해 커져만 간다. 그리고 결국 이런 상황은 안나의 두번째 가정을 불행하게 만든다. 결혼 생활이 대부분 이런 모습으로 불행하다면 결혼을 결정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아무르’를 보면 평생을 함께하는 반려자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감동하게 된다. 몸은 스스로 가눌 수 없으며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아내의 병간호를 몇 년간 도맡아하는 남편. 아내는 딸도 불편하다 하고 남편은 간호 도우미가 아내를 막 대하는 것 같아 스스로 아내 돌보기를 결심했다. 부부란 서로를 책임져야하는 관계다. 부부 사이의 책임이란 의무감에서 나오는 비자발적 행위가 아닌 또 다른 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반사적 행위다. ‘아무르’는 바로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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