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배기 아들을 둔 30대 직장인 전 아무개 과장의 취미는 종이접기다. 가위와 풀로 쓱싹쓱싹 오려 붙여 로봇과 동물, 만화 캐릭터를 만든다. 전문 용어로 '페이퍼 크래프트'라고도 하는데 암만 봐도 그냥 종이접기다. 회사 후배의 집들이에도 화장지 세트나 과일 세트가 아닌 종이 여우 한 마리를 정성껏 접어 선물했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인 전 과장은 왜 종이접기에 몰두하는 것일까. 그는 종이를 접으면 무념(無念)의 상태가 된다고 한다. 손은 움직이지만 머리는 멈춘다. 전 과장도 물론 주말에 쉰다. 하지만 쉬는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온갖 잡념이 맴돌아 휴식을 방해한다고 한다. 쉼조차 고달픈 그에게 생각을 완전히 비워주는 종이접기만이 진정한 휴식을 주는 것이다.
무인 항공기인 드론 매장 단골 고객 중에는 83세 노인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제법 능숙하게 드론을 조종하는데 손자뻘 되는 매장 매니저를 향해 쏜살같이 드론을 날리며 장난을 친다. 놀래 움찔하는 모습을 보며 껄껄대는 표정이 당하는 사람보다 더 해맑다. 할아버지는 드론을 날릴 때마다 창공을 날고 싶어 연을 띄우던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린다.
정교한 부품을 조립해 로봇을 만들고 색칠까지 하는 매장에도 어린 아이들보다는 키가 자랄 대로 자란 청년들이 더 많다. 이들이 엄지와 검지로 집어들기조차 힘든 작은 부품 조각을 놓고 씨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삼십년 전 학교 앞 문방구에서 100~200원짜리 로봇 조립 세트를 하나 사서는 머리를 맞대고 끙끙대던 동네 아이들이 생각난다.
요즘 군대에는 중대장에게 아들 안부를 묻는 부모의 전화가 한 달에 1~2통씩 걸려온다고 한다. 학점 문제로 지도교수와 면담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취직한 아들을 대신해 급여 조건을 협상하는 부모도 있다. 주변에는 취직을 해 일터로 나가는 대신 집안에 틀어박혀 온종일 일본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사는 20대 청년이 부지기수다. 인생과 사회에 대한 고민에 몰두해야 할 대학생들은 취직과 스펙 쌓기에 열중한 나머지 성인이 돼서까지 어른 아이로 지내는 '성장통'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요즘 20~30대를 가리켜 '아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는 시기'라고 했다.
최근 어른이 됐지만 동심을 잃지 않는 키덜트족이 화두가 되고 있다. 옛날에는 어른과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덕적 규범에만 어긋나지 않는다면 감정에 따라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애 같은 어른으로 조롱 받았지만 지금은 당당한 취미로 얘기한다. 많은 이들은 작금의 키덜트 현상을 여러 갈래로 해석한다. 취업과 결혼을 포기한 채 유예된 성인식을 치루고 있는 젊은이들과 스트레스와 책임감을 버리고 힐링을 찾아 떠나는 어른에 이르기까지 키덜트들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짓눌린 가장의 책임감, 이루지 못한 꿈과 어릴 적 향수, 그리고 자의와 타의에 의해 성장을 멈춰버린 우리 젊은이들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모든 키덜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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