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의 떼죽음을 몰고 올 운명의 순간이 올 것인가.’ 최악의 사태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미 의회가 다시 한번 구제금융 법안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번주는 세계 각국 금융기관의 생사를 가름할 ‘운명의 시간’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주 내 새로운 구제법안이 마련되면 미국의회가 이를 통과시킬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구제금융 법안은 월가 금융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법안 처리가 늦어지거나 안 되면 경기침체의 고통은 더 길어지기 때문에 미 의회가 구제금융 법안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건은 이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 것인가라는 점. 월가에서는 이미 특정 은행의 파산 루머가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JP모건에 매각된 워싱턴뮤추얼에 이어 미국 2위 저축은행인 소버린뱅코프, 오하이오주 최대 은행인 내셔널씨티 등 일부 은행들에 적신호가 켜졌다. 두 은행의 주가는 이날 73%와 63% 빠져 투자자의 패닉을 반영했다. 현재로서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신속한 공조체제가 당장의 불길부터 잡는 열쇠다. 헨리 폴슨 재무부 장관은 구제금융 부결 후 기자회견에서 “가능한 모든 방안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의회의 견제를 받는 재무부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거의 없는 편이다. 실제로 FRB의 가용자원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FRB는 지난 3월 베어스턴스 붕괴 직후 ‘기한부 국채임대대출(TLSF)’제도 시행으로 현찰이나 마찬가지인 보유 국채가 거의 고갈돼 급기야 재무부로부터 최근 국채를 수혈받았다. FRB로서는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를 찍어내는 길밖에 없으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공적자금 투입이 지연될 경우 글로벌 시장은 엄청난 역풍이 우려된다. 특히 국제 자금시장에서 달러 유동성이 갈수록 고갈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의 충격은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 60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웨델&리드파이낸셜의 헨리 헤르만 회장은 “후폭풍을 가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채권왕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 역시 “법안이 시행되지 않으면 신용시장에 엄청난 구멍이 생기게 된다”며 구제금융 외 대안이 없음을 강조했다. 이날 법안 처리가 실패로 끝나자 월가에는 오는 10월 중 금리인하 가능성을 기정 사실화했다. FRB는 10월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이미 연방기금 선물은 10월 중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100%, 0.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82% 반영했다. 이날 월가에서는 FRB가 10월 말까지 기다리지 않고 긴급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급속히 대두되고 있지만 FRB의 금리인하 조치가 신용위기 해소에 어느 정도 기여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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