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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과학혁명 가능케한 16세기 직인들의 현장기술

■ 16세기 문화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동아시아 펴냄


SetSectionName(); 17세기 과학혁명 가능케한 16세기 직인들의 현장기술 [책과 세상]■ 16세기 문화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동아시아 펴냄 정승양기자 schung@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역사에서 16세기는 흔히 '이름 없는 세기'로 불린다. 역사가 마틴 버널은 '16세기는 이름이 없다'거나 '눈에 띄는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술·사상사로 봐도 고전 연구에 치중한 르네상스와 비교할 때 후기 르네상스라고 이름 짓기에도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보카치오나 라파엘로가 활동한 15세기 르네상스와 갈릴레오나 뉴턴으로 대표되는 17세기 과학혁명 사이에 존재하는 16세기에는 탁월했던 인물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천재들이 주도했던 15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과학혁명 사이에 존재했던 16세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이 책은 그간 역사가들에게 홀대 받던 16세기를 과학사적 의미에서 재평가했다. 저자는 그 기간중 17세기를 준비하는 지식 세계의 거대한 지각변동, 즉'16세기 문화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갈릴레오, 뉴턴 등 17세기 천재들이 남긴 혁혁한 업적과 18세기 산업혁명은 16세기 문화혁명이라는 지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히말라야 산맥론이다. "세기의 지붕이라고 하는 히말라야 산맥에는 초모랑마나 안나푸르나 등 고봉들이 우뚝 솟아있다. 그러나 그들은 저마다 고립된 상태에서 그처럼 높은 봉우리를 자랑하고 있는게 아니다. 바다 밑에 있던 지반의 대규모 지각변동 결과 생겨난 것이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들이다" 저자는 지식을 독점한 소수 엘리트 계층에 헤게모니가 있었던 이전과 이후 세기와 달리 16세기는 예술가나 기술자들에게 변혁의 헤게모니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학문 세계의 경계를 넘어 들어갔고, 영어, 독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등으로 저술활동을 함으로써 라틴어로 보호받던 대학 아카데미즘 독점을 깼다. 또 종전까지 천시됐던 수작업과 기계적 기예의 가치를 분명히 했고 경험을 중시하는 과학의 중요성과 유효성을 명백히 해 나감으로써 17세기 과학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들의 소박한 경험주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실험과 측정의 결과를 수학적으로 이론화된 법칙으로 확정하지 못한 점이 그것이다. 가설과 논증의 체계를 갖춘 하나의 이론으로 세우지 못함에 따라 16세기 직인들은 과학혁명으로 가는 길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고 저자는 선을 긋는다. 결국 그런 한계 때문에 17세기 지식 생산의 헤게모니는 결국 기술자에서 상류계층의 과학자로 넘어가게 됐다고 지적한다. 수많은 도판과 사례, 자료를 통해 지식의 공개와 누적적 진보라는 근대사상이 16세기 직인들의 기술과 실천을 통해 어떻게 싹텄는지를 세밀화처럼 그려낸다. 3만6,000원.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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