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늑장 리콜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GM이 '160만대 리콜' 사태를 부른 점화장치 결함을 개발단계부터 알고도 은폐했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사망 피해자도 GM 측 주장의 25배에 이른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피해자 집단소송 과정에서 GM의 사기죄가 입증될 경우 지난 2009년의 파산위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GM이 연방 자동차규제 당국에 제출한 자료를 인용해 GM이 점화장치 결함을 2001년부터 인지했다고 보도했다. GM은 이 자료에서 2002년 판매에 들어간 새턴이온 차량 점화 스위치가 잘 꺼지는 문제 등이 2001년 개발단계부터 드러났지만 차량 재설계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결함을 제대로 해결하지도 않은 채 판매를 시작한 셈이다. 인지시점 역시 지난달 GM이 리콜을 실시하며 주장한 2003년보다 2년이나 빠르다. 또 GM은 2004년 시보레 코발트의 점화 스위치가 작은 충격에도 기능을 상실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GM의 거짓 해명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피해 사망자가 당초 알려진 12명보다 훨씬 더 많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자동차 안전 데이터 분석기관인 프리먼리서치는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 자료를 통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시보레 코발트(2003~2005년산)와 새턴이온(2003~2007년산)의 에어백 사고를 조사한 결과 사망자가 303명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집단소송도 봇물을 이룰 조짐을 보인다. NYT는 샌프란시스코 한 전문 로펌에만도 200여통의 문의전화가 쇄도했다고 전했다. 미 의회와 법무부·교통안전국 등도 '늑장 리콜'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 '빅3' 자동차 업체의 수장에 오른 메리 바라(사진) 최고경영자(CEO)도 취임 두달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포브스는 "메리 CEO가 리콜 사태를 잘 넘기면 입지를 더 강화하겠지만 반대의 경우 사임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집단소송전이 벌어지더라도 GM의 패소 가능성은 아직 낮다. GM은 2009년 구제금융 때 부실자산을 떠안은 '올드GM'과 우량자산 중심의 '뉴GM'으로 분할됐다. 당시 연방정부와 GM은 뉴GM이 2009년 이전에 발생한 차량결함 사고에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협약을 맺었다.
이 때문에 피해자 측 로펌들은 GM의 사기죄를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협약을 체결할 때 GM이 차량결함을 단순 은폐하는 차원을 넘어 광범위한 리콜과 심각한 소비자 피해가 예고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협약 자체가 무효라는 것이다. 존 포토 미시간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원고들이 사기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만약 성공하면 GM이 또다시 파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미 자동차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GM이 승소하더라도 이미지 추락에 따른 매출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NYT는 "피해자들이 올드GM에 소송을 걸 경우 푼돈밖에 못 건질 것"이라며 "메리 CEO에게 'GM이 피해자를 구제하지 않으면 너무 잔인하고 불공정하다는 평가를 들을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편지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도요타 역시 2009~2010년 차량 1,200만대를 뒤늦게 리콜했다가 24억달러의 손실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 훼손으로 고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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