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록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대표적 싱어송라이터인 신해철(사진)이 27일 오후8시19분께 심장 이상으로 숨졌다. 향년 46세.
신해철은 지난 22일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한 채 끝내 눈을 감았다.
신해철은 서강대 재학 시절이던 1988년 친구들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해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며 이름을 알렸다. 무한궤도가 불러 대상을 받은 '그대에게'는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대학교 축제나 운동 경기의 단골 응원 레퍼토리로 활용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무한궤도 해체 이후인 1990년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안녕' 등 히트곡을 쏟아냈다. 솔로 뮤지션으로 성공적 신고식을 치른 신해철은 이듬해 발표한 '마이셀프' 앨범부터 본격적인 '아티스트'의 길을 걸었다.
앨범에 수록된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와 같은 노래를 통해 그는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와는 차별화한 음악 스타일을 뽐내며 자신만의 개성적인 음악 세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솔로 뮤지션으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신해철은 1992년 록밴드 '넥스트'를 결성했다. 이후 넥스트는 1997년 해체되기까지 1~4집을 발표하며 1990년대를 대표하는 록그룹으로 로큰롤 음악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밴드는 '도시인' '날아라 병아리'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먼훗날 언젠가' '해에게서 소년에게'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 등 숱한 명곡을 쏟아냈다.
그러나 신해철은 1997년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며 밴드 해체를 선언한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과 프로듀싱을 공부했다. 유학을 전후해서는 '크롬'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전자 음악 사운드를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다.
2000년대 들어 그는 다시 꾸린 넥스트와 솔로 뮤지션으로서 앨범을 꾸준히 발표했다. 이 시기는 이전과 같은 대중성은 유지하지 못했지만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힌 시기로 평가받는다.
6월에는 오랜 공백을 깨고 솔로 6집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표하며 가요계로 복귀했다.
신해철은 음악 활동 외에도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 표명에도 적극적이었다.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간통제 폐지에 찬성하는 의견을 피력했고 2002년 대선 당시에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뮤지션뿐만 아니라 논객으로도 활동하며 카리스마를 보여준 그에게 팬들은 '마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하지만 신해철의 음악적 열정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성향과 과감한 발언에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1989년 대마초 흡연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그의 음악 경력에 큰 오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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