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시장에서는 ‘빅5’만 살아 남는다. 나머지 업체들은 로컬 컴퍼니(변두리 회사)로 전락해 겨우 연명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일본 노무라연구소가 지난 90년대 말 ‘미래 예측보고서’를 통해 내다본 자동차산업의 전망이다. 노무라보고서는 이어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2000년대 중반을 고비로 격변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랜드와 품질에서 뒤처진 ‘메이드 인 코리아’ 자동차가 지금까지 ‘중저가시장 공략’을 구사해온 것 역시 따지고 보면 ‘정상 정복’보다는 일단 생존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글로벌 경쟁은 승자의 ‘독무대’=“초우량기업의 프리미엄은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다. 초우량기업 주변의 숱한 기업들이 ‘협력업체’라는 서브 브랜드(Sub Brand)를 얻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펼친다. 이 노력들이 모두 초우량기업의 가격경쟁력과 브랜드 경쟁력으로 탈바꿈한다.“ 국내기업으로는 명실상부하게 초우량기업의 반열에 오른 삼성전자의 한 임원이 “투입비용(In Put)과 산출물(Out Put)의 내용이 달라진다”며 설명한 말이다. 현대차가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빅5’ 안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단순한 순위 싸움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격과 부가가치ㆍ이미지를 결정짓는 잣대로 작동한다. 21세기 글로벌 경쟁은 ‘승자만이 독식하는 시대’다. ‘빅3’ 내지는 ‘빅5’를 구성하는 브랜드와 일류제품만이 매출과 이익을 독차지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특히 품질차이가 크지 않다면 귀에 익고 눈에 선한 제품을 우선 찾는 경향이 강하다. GM과 포드 등 몇몇 ‘글로벌 빅5’ 자동차 업체들이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좀처럼 순위 바꿈을 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역으로 말하면 미국과 일본의 초일류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는 언제든 틈만 보이면 인수합병(M&A)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헬무트 판케 BMW그룹 회장은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먼저 고가(프리미엄) 브랜드로 갈 것인지, 대중적인 브랜드로 갈 것인지 선택한 뒤 핵심역량을 강화해 다른 브랜드와 구분되는 차별화를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브랜드 위치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난공불락’의 성은 없다=“현대차는 이제 막 ‘초기 발진구간’을 벗어났다. 지금부터는 진짜 강자들과의 싸움이 남아 있다. 노력하기에 달렸다. 오는 2010년까지 글로벌 빅5에 올라서는 것이 결코 꿈은 아니다.” 최근의 ‘현대차 비자금 사태’와 연결지어 ‘글로벌 무대에서의 현대차 가능성’ 등에 대해 취재진이 짙은 의구심을 나타내자 현대차그룹의 고위관계자가 강한 톤으로 항변한 내용이다. 본격적인 승부는 지금부터인데 ‘칼을 뽑기도 전에 대결해봐야 소용없다는 식으로 사기부터 꺾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는 부탁이다. 현재 글로벌 자동차시장은 유가급등과 환경규제 강화 등으로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자칫 한눈을 팔면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치지만 그만큼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선두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 역시 초일류의 대열에 합류, 일류 브랜드와 제품이 누리는 ‘프리미엄’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최근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차세대 시장에 사실상 ‘올인’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현대차그룹 앞에는 너무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과거 성장의 튼튼한 받침돌이던 국내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로 접어들었으며 환율 덕으로 수출해서 이익을 내는 시대도 지났다. ‘현대차 비자금 사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미국의 소비자 조사기관인 JD파워의 한 관계자는 “싼값이 유일한 경쟁력인 시대는 지났다”며 “현대차가 ‘빅5’를 따라잡으려면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더 많이 들으면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는 품질개선과 원가절감 노력, 건전한 노사문화 정착 및 치밀한 글로벌 마케팅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다. 외국계 자동차업체의 한 관계자는 “도요타가 2003년 ‘영원한 2위’ 포드를 제친 것이나 미국의 GM과 포드가 요즘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살펴보라”며 “부단한 노력 아래 ‘난공불락’의 성은 없으며 기업의 흥망성쇠는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