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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아버지들이 바쁘다. 취업박람회 소식을 전하는 신문과 방송에는 서류봉투를 하나씩 움켜쥔 아버지들이 자주 보인다. 머리카락의 절반을 잃어버려 반짝이는, 새벽 서리를 흠뻑 맞은 듯 백발이 성성한, 아빠가 아닌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 말이다. 손주 재롱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는 것이 잘 어울리고 그래야 할 나이인데 청년들 틈에 끼어 서성인다.

아버지들의 표정도 밝지 않다.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고는 있지만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청년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아버지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소일거리를 찾으러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것 같지도 않다. 아버지들의 어깨에서는 묵직한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노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자식들을 도와줘야 하는 짐을 아직 덜어내지 못한 듯하다.

이제는 여생을 즐길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식들이 좋은 짝 만나서 아들딸 낳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될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는 듯 보인다. 아버지들의 얼굴에는 아주 오래전 청년 시절의 절실함이 그대로 묻어 있다. 한 시대를 처절하게 견뎌내고 노년에 접어든 이들이 가뜩이나 썰렁한 취업 전선에 또다시 들어서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들은 노년을 여유롭게 보낼 준비를 못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어렵게 어렵게 챙겨왔다 하더라도 자녀들이 분가할 때나 어려움에 처할 때 보태줄 요량으로 손대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들의 마음이 그런 것이다.

아버지들이 걸어온 길은 참으로 자랑스럽다. 초가에 살며 끼니 거르는 것이 일상이던 가난한 나라를 오늘의 풍요로운 나라로 키운 일등공신들이다. 가정에서는 가족 모두가 온전할 수 있도록 지탱해준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아들딸을 세계인으로 당당하게 키워냈다. 아버지들이 그랬다.



'삼식이'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은퇴한 남편이 바깥에 나가지도 않고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그렇게 불린단다. 잠깐 웃었지만 이내 씁쓸했다. 그래서 아버지들이 지금 취업 전선으로 몰려나오는 것일까.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곳간을 채우는 일은 아버지들의 몫이었지만 곳간을 독차지하려거나 그것을 무기로 생색내려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노후 준비를 못한 이유와 같이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아버지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버지들에게 힘을 줬으면 좋겠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이바지한 것에 대한 보답을 바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버지들은 '왕년'을 잊었다. 혹여 맘에 안 차는 이력서를 내밀더라도 반갑게 맞아주기를 바란다. 기업인들의 몫이다. 아버지들은 '설움'에 겹다. 혹여 엊그제 배워 어설픈 색소폰 소리를 내더라도 즐겁게 들어주기 바란다. 이웃사람들의 몫이다.

그리고 이것은, 가족의 몫이다. 지금 일자리를 찾아 뛰어다니는 아버지의 몸과 마음이 청년 시절 같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아버지의 건강을 잘 살펴드려라. 아버지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큰 힘을 얻을 것이니.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온 식구가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정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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