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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회적 대타협 급하다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부진으로 우리 경제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를 두고 보수측에서는 현 정권의 친노동자적 혹은 반시장적 성향 때문이라며 연일 정치공세를 가한다. 그러나 투자부진의 문제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외환위기 직후 우리 경제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인 자본시장 규율 중시의 미국식 경제개혁에는 투자를 위축시키는 복잡계가 깊숙이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초 미국식 개혁을 적극 지지했던 보수측으로서는 투자부진의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미국식 경제개혁은 보수ㆍ개혁 양 진영간의 암묵적 합의를 통해 이뤄졌다. 기득권을 가진 보수진영은 정부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이를 지지했다. 개혁진영은 경제 민주화를 이유로 이를 선택했다.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게 외국자본은 경제 선진화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 지정됐고 이들의 자유로운 진출을 위해 자본시장은 활짝 개방됐다. 그런 가운데 외국자본의 진출 형태가 크게 달라졌다. 종래 은행 대출자본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기관투자가들이 제공하는 주주자본이 대부분이다. 이들 외국계 주주자본은 이미 국내의 유력기업과 은행권에 막대한 투자지분을 확보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당당히 주인으로서 기업활동의 목표를 주주이익 극대화로 규정했다. 이처럼 위기를 계기로 국가주도의 경제를 시장주도로 바꾸는 과정에서 외국자본 순기능론이 잉태됐다. 이것은 자본시장 개방론을 파생하고 나아가서는 주주이익 극대화를 신성불가침의 경제원리로 자리잡게 했다. 문제는 바로 주주이익 극대화에 있다. 주주의 단기적 이익논리가 중장기 투자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마침내 국내 유력기업은 이익창출만 있고 고용창출이 없는 우량의 역설이라는 덫에 빠져들었다. 금융기관은 위험자본의 공급을 회피하고 있다. 당초 외국자본은 총투자의 파이를 키울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주주자본으로 입성한 외국자본은 경영의 시계를 단기화하고 국내저축과 국내투자의 연결고리를 단절함으로써 총투자를 오히려 위축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은 주주이익 극대화의 압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처럼 해법의 방향성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대책 마련이 쉬운 것은 아니다. 주주이익 극대화를 막겠다고 자본시장의 개방을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진출을 인정하되 이들의 영향력을 일정 수준 통제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가능한 조치는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재벌의 지배권을 안정시키고 국민연금의 일부를 전략적 계정으로 지정해 주요 금융기관에 안정지분을 공급해야 한다. 아울러 스톡옵션의 규제로 주주-경영자간 담합의 고리를 끊고 우리사주 개혁으로 노동자의 경영참가형 출자를 확대하며 실물경제의 발전과 안정을 제약하는 투기적 행위에 대한 공권력의 감시를 강화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 이런 조치는 모두 이해 당사자간 논란의 여지가 매우 큰 것이므로 조기 도입이 간단하지 않다. 유일한 돌파구는 권력핵심부인 청와대가 냉철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확고한 의지를 갖고 큰 틀에서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것이다. 어느덧 국민경제는 금융 세계화의 드높은 파고 속에서 창틀에 갇힌 용처럼 허덕이고 있다. 개방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되 개방의 코스트를 최소화할 수 있는 내부적 조절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바로 사회적 대타협이고 이런 조건하에서만 성장-분배-투자-일자리를 모두 충족하는 시장경제가 가능하다. 물론 이 같은 실천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국내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전체, 다시 말해 가계와 기업ㆍ정부 등 경제 주체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만약 안일한 자세로 사회적 대타협을 미룰 경우 우리 경제는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찬근 교수<인천대 무역학과 교수ㆍ대안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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