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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여행기

서양화가 서용선 풍경전<br>오대산 사고·월정사·지리산 청학동<br>美 시애틀 국립공원·獨 베를린 등<br>작년부터 여행했던 장소 풍광 담아

'오대산 소금강'

'오대산 월정사'

'주왕산 금수대'

정철의 '관동별곡'이나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 기행문학에 대한 우리 민족의 사랑은역사가 깊다. 최근에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필두로 한 다양한 서적의 영향을 받은 문학기행 열풍이 뜨겁다. 그런데 여기, 글이 아닌 그림으로 여행을 떠난 이가 있다. 서양화가 서용선(61)이다.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로 독보적인 그는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으며, 그림에만 몰두하기 위해 서울대 미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용선의 '풍경'전이 종로구 인사동 동산방화랑과 팔판동 리씨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리고있다. 역사와 도시, 민족 분단 등 묵직한 주제로 작업해 온 그가 풍경으로 눈을 돌린 것은 최근 몇 년의 일이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부터 그가 누비고 다닌 오대산과 지리산, 시애틀과 베를린 등지의 풍광이 그림에 담겼다.

오대산에서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 왼쪽에 자리잡은 오대산 사고(史庫)를 그린 작품을 두고 작가는 "조선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의젓한 건축"이라 평했다. 그는 "사고는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 책을 보관하는 집인데, 한아름 기둥이나 통풍과 조경을 모두 고려한 입지를 보면 문치주의를 택한 조선이 얼마나 책을 숭상했고 자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단종애사(端宗哀史)'에 얽힌 역사화를 다수 그렸던 작가에게 세조가 머물렀던 상원사 그림은 의미가 남다르다. 달의 정기를 머금은 월정사의 야경, 작은 비석이지만 늠름함이 돋보이는 오대산 '사자암'과 울창한 자연 속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적멸보궁', 가늘지만 더욱 강인한 적송(赤松)의 생명력이 돋보이는 '오대산 소금강' 등이 눈길을 끈다. 오대산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그린 석양 풍경은 진녹(津綠)의 산과 붉은 산맥 너머로 연두와 형광분홍 등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한 하늘의 색이 탁월하다.



또한 한민족의 가장 오래된 신화인 마고(麻姑) 설화의 고향인 마고성이 있는 '지리산 청학동에서'나 육지로 파고든 해안선이 일품인 전남의 '강진 해월주에서'등은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미국 시애틀을 그린 작품들은 한국의 풍경과 비교하는 맛이 있다. 작가는 "미국 서부는 아직 사람보다 숲이 더 많아 원시적 느낌이 남아있고 겨울 풍광에 녹색과 눈의 흰색이 끝없이 펼쳐지는데, 우리의 겨울은 갈색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시애틀 국립공원의 야경은 지워버린 듯한 보름달 아래로 곧게 뻗은 푸른 길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인생과 동행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동양의 옛 철학자들은 '자연은 곧 우리 마음 속에 있다'고 했는데 풍경을 그리다 보니 자연에 다시 눈뜨게 됐다"라면서 "환경문제가 더 부각되는 현대사회에서 도시문명의 한계가 보일수록 자연의 중요성이 더 커지기 때문에 예전의 산수화와 오늘의 풍경화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역사 풍경을 자연과 연결할 수 있을지, 아예 산에 살면서 새벽별과 밤의 침묵도 봐야하는 게 아닌지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2일까지. (02)733-5877, 3210-0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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