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매수세가 없습니다. 수요자들은 여전히 저가 급매물만 찾는 등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없는 상황입니다."(개포동 M공인 관계자)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아파트(전용면적 58㎡)에 전세로 살고 있는 정모(38)씨는 지난달 보증금 3억원에 재계약을 했다. 정씨가 이 아파트에 처음 이사를 온 것은 4년 전인 지난 2010년. 당시 2억원 정도였던 전셋값은 한 번의 계약 갱신을 거쳐 4년이 지난 지금 3억원이 넘는다. 그는 전셋값 상승분의 대부분을 대출을 통해 해결했다. 4년 전 전세보증금 중 2,000만원 정도를 대출로 조달했지만 지금은 대출이 9,000만원으로 늘었다. 그럼에도 정씨는 집을 살 마음이 없다.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으면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되고 이를 보상해줄 집값 상승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기 때문이다.
잇따른 부동산활성화 대책에도 시장 회복세가 주춤한 것은 정부의 예상과 달리 기존 주택에 대한 매수세가 저조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전세난에 따른 전세대출 금리 인하와 수차례에 걸쳐 진행된 청약제도 규제 완화 등의 대책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오히려 시장에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부의 7·24대책 이후 8~10월 석 달 동안 주택담보대출은 14조1,000억원 늘어났지만 실제 집을 사는 데 들어간 돈은 40% 수준에 불과했다. 2008년 주택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63.2%였던 것과 비교하면 주택구매수요가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매매전환을 기대했던 전세가구의 가계부채도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올 들어 8월까지 4조8,000억원 늘어난 32조8,000억원으로 조사됐다. 8월까지 완료된 전월세거래 99만6,000여건 중 전세거래가 60% 정도인 59만여건임을 감안하면 산술적으로 한 건당 800만원가량의 부채가 늘어난 셈이다. 전국 가구당 평균 전세보증금(1억6,000만원)의 5%가량이 대출로 채워진 것.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가계부채 증가는 추가 대출여력과 가처분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주택매수세를 억누르게 된다"며 "전세 등 임대시장의 불안이 매매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국회에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 법안 역시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이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시장 심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지만 정치권의 대립이 이어지면서 이미 처리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가을 이사철과 맞물려 법안이 통과됐으면 현재 시장상황이 더 좋아졌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경제 펀더멘털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견고한 회복세를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세계 경제가 불안한 가운데 국내 경제상황도 낙관적이지 않은 만큼 부동산시장만 회복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당분간은 현재의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런 상황이 내년 봄 이후까지 장기화할 경우 임대시장과 매매시장을 함께 고려한 대책을 마련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