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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이상한 나라의 박 대통령

대통령 나서야 움직이는 정부… 공무원·검찰 소신은 사라지고

눈치보기와 복지부동만 팽배… 대선공약인 책임장관제 없이

포퓰리즘과 말의 성찬 엿보여… 팀워크는 경제회복 절대조건


이상(理傷)하다. 한국이 이상한 나라로 바뀌어 간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비정상의 정상화'와 반대다. 비정상의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두 장의 사진이 떠오른다. 고령의 각료와 장성들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말을 수첩에 담는 북한과 국무위원들이 박 대통령의 깨알 지시를 고개 숙여 받아적기 바쁜 대한민국의 모습이 뭐가 다른가.

비단 장관들뿐이랴. 국정원의 간첩조작 의혹에 침묵하던 박 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하고 철저한 수사를 다짐한 뒤 6시간 뒤에 검찰은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대통령의 언급이 없었다면 얼마나 뭉갰을까. 간첩조작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가의 기본을 흔드는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외국 정부의 문서를 위조하고 시민에게 누명까지 씌운 행위는 민주주의를 부인하고 나라 망신살 뻗치며 국격까지 떨어뜨렸다. 내란에 버금가는 범죄다. 검찰이 비정상·비상식의 극치인 이 사건을 대통령의 말씀 이후에야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으니 한국이 이상한 나라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행정부는 더하다. 장관을 배제하고 청와대와 직거래하려는 공무원들 소식이 들린다. 그렇다고 청와대 비서관들이 권한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수석 비서관은 정권 출범 직후 인사에 대한 건의를 적극적으로 올리다 대통령으로부터 '인사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는 입을 닫았다고 한다. 한없이 작아진 장관과 정부 부처의 위기는 바깥에서도 잘 안다. 오죽하면 북한이 남북대화의 창구로 통일부를 제쳐두고 청와대를 원했을까.

국가 시스템보다 지도자의 지시에 정부가 움직이는 나라는 후진적이다. 행정과 법질서보다 우위인 정치권력은 위험하다. 잘못된 판단을 한 번이라도 내리면 나라 전체가 그릇된 방향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설령 지도자가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더라도 정부 시스템의 작동을 보장할 때만 나라가 성장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다. 개발연대의 명재상으로 손꼽히는 장기영·남덕우 전 경제부총리는 각각 3·4년 넘게 재임하며 경제정책의 전권을 행사하며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생전의 남 전 부총리로부터 '차관이나 차관보를 임명할 때 박정희 대통령에게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직접 들은 적도 있다. 재무부 장관 재임 기간까지 합치면 남 전 부총리는 9년 넘도록 인사에서 주요정책까지 소신대로 부처를 운영했고 그 결과는 성장으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했던 '책임장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부친에게서 왜 이런 소양은 물려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지 안타깝다.



이(理)가 상(傷)하면 의(義)도 붕괴하기 마련이다. 국정 목표가 아무리 절실한 당위성을 가져도 정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성공은 불가능하다. 더욱 불길한 조짐은 주요 정책과제에서 포퓰리즘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공기업 개혁을 보자. 주지하듯이 공기업은 원성의 대상이다. 신의 직장으로 불릴 만큼 높은 급여와 복지는 질시를 사기에 딱이다. 국민들이 공기업 개혁을 지지하는 바닥에는 일말의 시기심이 깔려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나. 물론 방만경영을 바로잡자는 대의에 수긍할 수 있으나 방만경영의 원인을 제공한 게 누구인가. 이전 정권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어 보인다. 낙하산이 여전한 탓이다. 통일 대박론 역시 그 명칭만 대박쳤지 내용도 진전도 없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말의 성찬으로 경제규모 세계 15위권인 대한민국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루이스 캐럴이 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소녀는 온갖 기묘한 경험과 위험을 만나지만 결국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대통령의 조타술이, 내각의 팀워크가 살아난다면 회복기미를 보이는 경제도 탄력을 받을 수 있으리라.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전진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르며 효율도 높다./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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