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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사진작가 레이첼, 서스만 북아메리카·시베리아·남극 등 돌며
고령생명체 30종 생생히 담아내
생명 활동이 중단된 적 없이 지속적으로 살아온 최고령 생물은 무엇일까.
학계에서는 영구 동토대의 지하에 사는 시베리아 방선균을 최고령 생명체로 보고 있다. 이 박테리아의 추정 나이는 짧게 잡으면 40만살, 길게 잡으면 60만살이다.
50만년 전에는 현생 인류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을 생각하면, 방선균은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생물인 셈이다.
'위대한 생존: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는 세계적 사진작가인 저자가 최소 2,000살 최대 60만살의 고령생명체 30종의 모습을 생생한 사진과 글로 담은 책이다.
이를 위해 2004년부터 10여년간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 유럽은 물론 시베리아와 남극까지 발로 뛰었다. 단순히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생물들의 삶의 궤적을 지근에서 기록한다.
예술과 과학이 접목된 이번 프로젝트는 저자가 살고있는 북아메리카에서 시작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화이트 산맥에는 5,000살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브리슬콘 파인이 살고 있다. 브리슬콘 파인은 무성 번식 군락이 아닌 단일 단위 생물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종으로 알려져 있다. 브리슬콘 파인은 개체 전체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은 시스템은 모두 닫고 제한된 영양분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나뭇가지 딱 하나만 빼고 나머지는 다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국 오리건주로 이동한 저자는 꿀버섯, 혹은 거대 버섯균이라고 불리는 아르밀라리아 오스토이아에를 찾는다. 2,400살로 추정되는 꿀버섯은 장수 생물종 중 유일한 포식 생물이다. 꿀버섯은 가장 큰 생물 중 하나로도 꼽히는데, 거의 9 ㎢에 걸쳐 있다. 균류는 지구상에 가장 널리 분포돼 있지만 2,000살 이상의 고령 생물 중에서 균류는 아르밀라리아가 유일하다.
100년에 1센티미터씩만 자라는 그린란드에 있는 지도이끼(3,000살~5,000살)도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고령 생물 중 하나다.
남아메리카로 넘어간 저자는 토바고 섬에서 2,000살로 추정되는 뇌산호를 만나기 위해 스쿠버다이빙까지 배웠다. 뇌산호는 2,000살 이상의 생물을 찾아 나선 여정에서 저자가 처음 만난 동물계 생물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돌아본 저자는 유럽으로 향한다. 시칠리아 산탈피오에서는 아라곤 여왕과 기사 100명과 기사들의 말이 모두 들어가 피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100마리 말의 밤나무(3,000살 추정)를, 스페인 발레아레스 군도에서는 10만살로 추정되는 포시도니아 해초를 촬영한다.
저자는 그리스 암흑시대(도리아인의 침입으로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기원전 1,100년경부터 그리스 도시 국가가 처음 등장한 기원전 800년경까지의 시기)에 태어나서 아직도 살아 있는 올리브 나무(3,000살 추정)가 있는 그리스 크레타 섬 아노 보우베로 이동한다.
이 곳의 올리브 나무는 서구 문명의 기초가 된 고대 그리스 문명을 지켜봤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작고 조용한 마을인 아노 보우베를 넓은 세상과 연결 시켜준다. 4년마다 이 나무에서 가지를 꺽어서 올림픽 월계관을 만들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영감을 줬다는 야쿠시마 숲 속 깊이 숨어든 조몬 삼나무(2,180~7,000살 추정)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고, 보다 적합한 기후를 찾아 한 뿌리 한 뿌리씩 이동하는 너도밤나무(6,000~1만2,000살)를 만나기 위해 발길을 돌려 남극을 찾기도 했다.
책에 등장하는 생물들은 모두 혹독한 환경을 이겨 내며 생명을 유지해 왔다. 저자는 고령생명체의 질긴 생명력을 이어갈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이들 생명체는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고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2,000년 넘게 살아온 생명체들과 연결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겪는 경험을 축소시키자는 의미가 아니다.오히려 그 반대"라며 "고대부터 살아온 생명체의 눈으로 깊디깊은 시간에 접하면, 우리는 그들이 가진 큰 그림과 긴 시야를 빌려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즈는 추천사를 통해 "서스만은 태고의 우물가로 안내하는 시간 여행 탐험가다. 이 책은 새것과 덧없는 것들에만 줄곧 감탄하는 우리를 거의 영원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대단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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