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양정이 어떻든 간에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금융감독원 수뇌부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징계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최수현 금감원장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KB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 표면적으로는 두 CEO의 경징계를 환영하고 있지만 심각한 갈등구조인 KB 지배구조 문제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의 관계가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태에서 KB는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금감원 무리한 징계 결국 헛발질=민간 위원 6명, 금감원 수석부원장과 법률자문관 등으로 구성된 금감원 제재심은 위원들 간에 격렬한 논의 끝에 결국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경징계를 확정했다. 임 회장에 대한 제재 사유 중 하나였던 KB의 고객 정보 유출 문제가 감사원 개입으로 인해 제재 동력을 잃어버린 데다 은행 주전산기 교체 내분 과정의 부당한 행위 등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은 탓이다.
이 행장의 경우 도쿄지점 부당대출 문제가 당초 중징계의 주요 사유가 됐지만 이 행장 측의 적극적인 소명이 제재심에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당초 금감원은 국민은행 도쿄지점에서 무려 5,000억원이 넘는 부당대출 사태가 터진 것과 관련해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이었던 이 행장의 책임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입장이었다. 하지만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에게 해외 지점의 여신 취급 적정성에 대해서까지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데 제제심 위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 주전산기 교체과정에서 내분 역시 이 행장에게도 책임은 있으나 이 행장이 이를 직접 금감원에 보고했다는 점이 참작된 것으로 보인다.
◇감독 당국 책임론 거세게 일듯... KB도 대혼란=금감원은 제재심 위원들이 대부분 민간위원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금감원 검사국의 사전통보 내용과 징계 수위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 어윤대 전 KB지주회장의 경우도 당초 중징계가 사전통보됐지만 제재심에서 경징계로 경감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최 원장이 연초부터 ‘법과 원칙’을 거론하며 금융권 CEO 들에게 엄벌을 강조해왔고, 지난해부터 유달리 KB에서 각종 금융사고가 빈번하게 터졌던 점을 고려하면 제재심의 이번 제제 결정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결국 경징계로 끝날 사안이었다면 당초부터 무리한 징계를 고집하지는 말았어야 했다”며 “KB는 KB대로 상처가 더 깊어졌고, 금감원은 앞으로 금융회사에 영이 설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금융당국은 9월부터 국정감사 등을 앞두고 있어 여론과 상반된 이번 징계 결과를 두고 국회의 포화를 맞게 될 전망이다.
KB는 회장과 행장에게 사실상 ‘면죄부’가 주어지면서 더 상황이 복잡해졌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이번 징계 결정 이후 자리를 지키기 위해 위해 표면적으로 갈등을 봉합하려는 시도는 할 수 있겠지만 곪아터진 KB 내부를 혁신하는 근본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 수뇌부 갈등의 원인이 된 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도 한 발짝도 진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KB 노조 측은 이번 결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KB노조 측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사실상 KB를 죽이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며 “당국이 책임을 완전히 회피한 만큼 회장과 행장의 동반퇴진을 위해 노조 차원에서 강력한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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